10월에는 4편의 영화를 보았다. 개봉작보다는 뒤늦게 찾아본 영화들이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특히 메릴 스트립의 <줄리&줄리아>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섬세하고 멋진 영화였다. 나이가 들수록 스케일의 남성 감독보다 삶에 대한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여성감독에게 더 신뢰가 간다.
1. 마션 (The Martian) - 2015
<블레이드 러너>라는 걸출한 SF영화를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이 79세 노장의 나이에 내놓은 ‘지구 귀환 프로젝트’가 3일만에 100만 관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았지만, 최근 흥행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의외의 반응이다.
‘마션’은 화성이라는 지구와 동떨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은 한 인물의 유쾌한 생존기이다. 지구에서 5만 KM 이상 떨어진 탓에 구조대가 와도 4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살아남기위해 화성에서 그는 식물을 재배하고 공기를 만들고 지구에 신호를 보내 자신의 생존을 알린다.
그 대책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영화의 대부분이고 그는 결국 귀환에 성공한다. 주인공이 너무나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그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현실에 불만인 나를 돌아보게 된 영화기도 하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화성이라는 장소를 (사막촬영으로) 제대로 구현해낸 비주얼과 절망적 상황에서 늘 긍정적 유머를 잊지 않는 맷 데이먼(마크 와트니 역)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후반부에 식량이 부족해 확 살이 빠진 모습마저도 멋지다!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가 혼자 화성에서 어떻게 산소를 발생시켜서 살아남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을 보며 아..역시 사람이란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저렇게 살아남는건가 하며 쓸모없은 문과생의 비애를 느끼기도 했다.
<마션>은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의 배경을 화성과 우주로 바꾼 공상과학영화(science fiction films)이자, 이동진 기자의 표현대로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재난 SF영화"라고 할만하다.
2. 뷰티풀마인드 - 2015
오랫만에 예쁜 웰메이드 로맨스 영화 한편을 보았다. 내 영화 선택의 기준이 주로 감독인데 백종열(백감독)이란 이름은 낯설었다. 설국열차의 타이틀 디자인을 맡은 사람의 데뷔작이라니 ... 주위의 추천으로 영화를 보았는데 한효주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만큼 그녀가 예쁘게 나온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유연석과 이진욱이 나온다는 것도 선택에 한 몫.
19세 생일날부터 매일 얼굴과 성별, 나이가 휙휙 바뀌는 비밀을 가진 주인공 우진과 우연히 가구 매장에서 보고 한눈에 반한 한효주와의 사랑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 주인공이 무려 21인 1역이라는 파격 캐스팅이라니 정말 파격적이다. 유연석 뿐 아니라 이진욱, 김대명, 이범수, 박서준, 박신혜, 천우희, 김상호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이 매일 모습이 바뀌며 나타난다.
뷰티 인사이드는 사랑은 외모가 아닌 내면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하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결정적인 데이트나 스킨십, 재회 장면에서 모두 잘생긴 배우들로 배치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좀 석연치 않아 하는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뭐 영화적 한계를 감안해 어쩔수 없는 설정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크게 무리 없이 아름다운 로맨스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3. 줄리&줄리아 - 2009
요즘 이상하게 요리 영화가 끌려 자주 보게 된다. 우리 인생이 복잡해 보여도 먹고, 자고, 일하는 걸 빼면 별다른게 없다. 요리하는 행위는 참 단순한 노동을 원하지만, 또 그것만큼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올레KT에서 이번 주말 내가 선택한 영화는 줄리&줄리아. 좋아하는 연기파 배우인 메릴 스트립(줄리아 역, 이 영화를 위해 살을 찌우고 실제 인물과 말투까지 완벽히 소화한)과 에이미 아담스(아주 까칠하지만 귀여운 요리 블로거 줄리 역)가 주연하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연출했던 여류감독 노라 애프런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다. 2009년에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는데 놓친 영화인데 예고를 해주길래 냉큼 결재했다.
1940년대 불혹이 넘은 나이에 같은 외교관인 남편 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그 대머리 실장님이 남편으로!)을 따라 파리에 와서 전설적인 요리사가 된 줄리아가 8년간의 여정동안 프렌치 쿡북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과 2002년 뉴욕으로 이주한 줄리는 어릴적부터 그녀가 존경하는 줄리아의 524개의 레시피를 1년안에 시도해 블로그에 남기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시대를 초월해 요리라는 공통점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두 여자의 실화를 하나의 영화로 아주 자연스럽게 묶은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영화를 보기전에는 스승인 줄리아가 제자 줄리에게 요리에 대해 사사를 하는 뭐 그런 얘기인줄 알았더니 배경도 시대도 달라 한번도 만나지도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다. 물론 요리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깊이 소통하고 있긴 하지만 ...
줄리가 블로거로 등장하는 점도 시대상을 반영한 것. 요즘은 '블로거'라는 것이 하나의 타이틀처럼 불리는 세상이지만 사실 유명 블로거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한 열정을 갖고 지속하다보면 돈과 명예가 따라온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뇌리에 남는 몇가지가 있다.
몇시간에 걸쳐 요리하는 프랑스식 야채스프나 '뵈프 브르기뇽'을 해먹고 싶어진다.
컬러풀한 요리접시를 사서 요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대접하고 싶어진다.
부부간의 대화를 많이하고 서로의 일에 대해 격려하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기 믿음에 대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줄리아가 요리를 한 것은 남편과 요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늦은 나이란 없다.
줄리아의 남편 폴이 발렌타인데이에 줄리아에게 한 고백과 미션 완료 후 줄리가 자신을 지지해준 남편 에릭에게 해준 최고의 사랑의 고백도 감동적이다.
당신은 내 빵의 버터이고, 내 삶의 숨결이야.
Julia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life I love you darling girl. Happy Valentine's Day.
줄리아가 TV 요리 강좌를 하면서 늘 던지던 씩씩한 인사말도~
본아빼띠(Bon appétit!,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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