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서 9월까지 본 영화가 별로 없다. 여름방학을 타겟으로 한 대작들이 휩쓸고 난 후라 볼만한 대작이 별로 없기도 했고, 개성있는 작은 영화 중에서도 내 관심을 끄는 영화가 그다지 없어서 집에서 보고 싶었지만 극장에서 내려간 놓친 영화를 보거나 지나간 명작을 찾아서 보았다.
1. 인턴(The Intern) - 2015
선물로 받은 CGV 골드클래스 티켓으로 유아인이 열연한 '사도'를 보려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앤 헤써웨이 주연의 '인턴'으로 유턴했는데 기대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참 좋았던 영화. 알고보니 이 영화는 현대 여성의 삶에 대한 고찰과 나이듦에 대한 테마를 훌륭하게 다뤄내는 여성 감독이자 제작자이자 각본가인 낸시 마이어스의 작품이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왓 위민 원트>를 재밌게 본 사람이라면 선택해도 좋을 영화.
개인적으로 몇번이나 반복해서 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와 멋지게 수트를 차려입은 멋진 70세 인턴 '로버트 드니로'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이다. 거기다 요즘 스타트업 열풍으로 젊은 CEO들이 많은 요즘,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줄스(앤 해서웨이)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24시간 동동거리며 오가는 모습에서 나같은 워킹맘은 동병상련을 느끼기 충분하다.
사회공헌 삼아 뽑은 쇼핑몰 회사의 시니어 인턴에 합격한 70대 남자 벤 휘태커가 워커홀릭인 성공한 30대 여성 CEO 줄스 밑에서 일하게 된다는 재밌는 설정에다 영화 내내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웃음이 떠나지 않고 유쾌하게 볼 수 있어서 공감이 참 많이 가는 영화이다.
몇 개의 스마트폰으로 동시에 멀티 채팅을 하고 침대 앞에서도 노트북을 놓지 않는 줄스와 40년을 한 직장에서 부사장으로 은퇴한 벤은 70년대 서류가방에 알람시계, 폴더폰(SAMSUNG로고 크게!)을 갖고 다니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회사에서는 유능한 CEO이지만 집에서는 남편의 내조를 받으며 일상을 이어나가는 은근 귀여운 허당이다. 엄마를 흉보는 이메일을 엄마에게 잘못보내 인턴들에게 컴퓨터를 훔쳐오게 하거나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먹고 오바이트해 벤의 손수건을 빌리고, 남편의 외도 앞에서 어쩔줄 몰라 엉엉 우는 모습이 무척 인간적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인턴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가 결국 늘 자신의 곁에서 맴돌지만 섣불리 간섭하지 않고 꼭 필요한 순간에 현명한 조언을 툭 던지는 나이 지긋한 인생 선배에게 저도 모르게 의지하게 된다. “손수건의 용도는 여자에게 건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로버트 드니로의 젠틀맨 연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의 여자친구인 사내 마사지사인 르네 루소도 정말 우아한 노년의 샘플같다. 나도 저들처럼 멋지게 늙어야지~
2. 심야식당(Midnight Diner) - 2015
밤 12시가 되면 문을 열어 새벽 7시까지 영업을 하는 '심야식당'이 있다. 뺨에 칼자국이 있지만 선한 인상의 마스터(코바야시 카오루)가 된장국 외에는 특별히 정해진 메뉴도 없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슥슥 만들어 내준다. 심야식당에서는 주인장과 조금씩 인연이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슬슬 펼쳐진다. 지진으로 상처받은 곳으로 자원봉사를 갔다가 구애를 받게 된 여자, 남편의 유골 상자를 두고 간 노년의 여인, 한물간 스트립쇼 걸, 게이, 조폭 등등. 그들은 곧 단골이 되고, ‘늘 먹던 거로요’라고 주문을 한다. 이들은 마스터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만화 <심야식당>의 원작처럼 매회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 등 몇개의 음식과 손님의 사연을 엮는 에피소드 형식의 영화다. 심야식당이 문을 여는 자정은 대부분이 잠든 시간으로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아웃사이더들이 모여들어 이들의 굴곡진 삶을 이야기한다. 문득 마음이 고플때 할머니가 해주시던 고향의 마밥, 엄마가 해주시던 빨간 문어발 비엔나, 사각형 프라이팬에 굽는 계란말이 등 심야식당을 가면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09년 <도쿄 타워>의 마쓰오카 조지 감독이 드라마 공동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영화를 연출했다. 드라마 출연진인 고바야시 가오루와 오다기리 조가 각각 드라마와 같은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3. 클로저(Closer) - 2005
얼마전 TV에서 유아인이 추천 멜로영화로 '클로저'를 추천하기에 충동적으로 올레TV로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몇번이나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미뤘던 영화였는데 이게 무려 10년 전 영화라니... 깜짝 놀랐다. 이렇게 오래전 영화라 촌스러우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웬걸 최근에 만들었다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된 멜로 영화였다. 사랑하는 과정없이 만남과 헤어짐만 있고 구체적인 설명이나 암시없이 점핑해서 건너뛰는 줄거리 때문에 중간중간 긴장하기는 했지만, 여느 불륜 영화처럼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선을 충실히 따르는 방식이 좋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댄, 사랑하는 이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어 사랑하기를 그만둔 앨리스, 댄 앞에서는 참고 있던 앨리스의 눈물을 사진으로 폭로한 안나, 앨리스의 진실을 거짓이라 비난한 래리, 오만하게도 그녀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댄까지. 이들 넷의 복잡하게 얽힌 사랑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충동적인 감정인지, 또 사랑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부스러질 수 있는지........
“솔직한 관계란 없으며 아주 잘해봐야 자신과 솔직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작가의 냉소적인 믿음에 한표!
우리는 누구나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판타지를 갖고 있다. 런던의 도심 한복판, 소설가를 꿈꾸지만 신문사에서 부고를 쓰는 댄은 출근길 인파 속에 유달리 눈에 띄는 한 여성에게 끌리게 된다. 횡단보도에 마주섰다가 달려오던 택시에 여자가 치여 쓰러지면서 얼떨결에 보호자가 된다. 쓰러졌던 여자 앨리스(내털리 포트먼)가 댄(주드로)을 보고 '헤이 스트레인저'라고 말하고 기절하는 장면이 매우 매혹적이다.
뉴욕 출신의 스트립댄서 앨리스 역을 맡은 여인은 레옹을 무너뜨린 작은 소녀 내털리 포트먼. 영화를 위해 전문 스트립 댄서에게 교습을 받아 수준 높은 랩댄스와 파격적인 노출 수위를 보여주며 열연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앨리스에게 첫눈에 반해 동거를 하며 3년 후 그녀의 인생을 소재로 소설가로 데뷔한 댄은 자신의 책 표지를 촬영해준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첫눈에 반한다. 앨리스의 눈물을 보고 연인이 있음을 눈치챈 앨리스는 댄을 떠나고......
클로저를 보고 나면 런던에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이다. 유럽 특유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음울한 날씨마저도 영화를 감미롭게 만들어준다. 댄이 앨리스에게 반하게 되는 장소인 피카딜리 광장,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거닐며 데이터하는 세인트폴 성당, 피부과 전문의 래리와 안나가 처음으로 만나는 수족관, 화이트리스 쇼핑센터 등을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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