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12시간의 긴긴 LA 비행시간 내내 할 것이라곤 영화를 보고 간간히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 뿐이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나름 괜찮은 영화 몇 편을 건진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랄까.
아울러 7월에 본 영화 몇편과 보고 싶은 영화를 정리해 본다.
1. 인서전트(The Divergent Series : Insurgent) - 2015
3월이라면 개봉한지 한참 된 이 영화를 난 왜 몰랐을까. 《다이버전트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베로니카 로스(이제 겨우 88년생! 원작이 대학때 써둔 스토리라니 놀랍다!)의 동명 소설을 원작인 이 영화도 역시 무척 좋았다. 원래 <마이너리티 리포트>류의 탄탄한 줄거리를 갖춘 감성 SF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여성이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인서전트>가 썩 맘에 들었다.
<인서전트>는 미국 내 3천만부의 판매 기록을 자랑하는 베로니카 로스의 소설 '다이버전트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의 닐 버거에 이어 2편과 3편은 로베르트 슈벤트케가 맡았다.3탄까지 이 감독이 연출할 계획이란다. 에러다이트(지식), 캔더(정직), 돈트리스(용기), 애머티(평화), 애브니게이션(이타심)의 5개 분파로 이루어진 미래 사회. 에러다이트의 수장 제닌(케이트 윈슬럿)이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는 '다이버전트' 중 100%인 트리스가 세계의 비밀이 담긴 상자의 열쇠라는 걸 알고 그녀를 쫓으면서 사건이 진행된다.
여주인공인 쉐일린 우들리(트리스 역) 뿐 아니라 케이트 윈슬렛과 나오미 왓츠 등의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균형을 잘 잡아준 듯하다. 헐리웃의 대세 배우들은 테오 제임스(몸짱 영국 신사 이미지 좋아!!!)와 <안녕, 헤이즐>의 남자주인공 안셀 엘고트, 헐리웃의 기대주 피터 역할의 마일스 텔러까지...공통점은 쉐일린 우들리의 상대역이었다는 것도 재밌다.
자신을 잡기 위해 희생되는 동료들을 두고 보지 못한 트리스는 스스로 제닌을 찾아가 상자의 비밀을 밝 히기 위한 다섯 가지 시뮬레이션에 도전하는 장면에서 시간과 공간, 현실과 가상을 넘나다는 SF 연출력이 압권인 영화. 다시한번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였다.
2. 웰컴, 삼바(Samba) - 2014
접시닦이며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는 ‘하루살이 불법거주남’과 ‘번아웃 증후군에 걸린 대기업 커리어우먼’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거주남 삼바는 그의 이름처럼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데 반해 유능하고 잘나가는 헤드헌터의 임원이었던 ‘앨리스’는 의욕제로 커리어우먼으로 방전되어 수면제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며 불안에 시달리는 여자로 등장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두 사람은 이민자센터에서 불법거주자와 자원봉사자로 처음 만난다. 전화번호를 절대 주지말라는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고 삼바에게 전화번호를 주게 된 앨리스. 서로의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특별한 우정을 만들어 간다.
올리비에르 나카체, 에릭 토레다노 감독은 <언터처블: 1%의 우정>이라는 전작에서 백인과 흑인 남성들의 우정이라는 파격 설정을 넘어 <웰컴, 삼바>에서는 프랑스 여성과 아프리카 남성의 우정(혹은 사랑?)이라는 파격 카드를 내놓았다.
여주인공은 프랑스의 얼굴을 대표하고 하는 여주인공 샤를로뜨 갱스부르는 ‘앨리스’를 연기하기 위해 ‘번아웃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찾는 병원들을 가볼 정도로 캐릭터에 애정을 보여서인지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을 겪는 불안한 여주인공의 심리를 차분하게 잘 소화한 느낌이다.
두 감독과 벌써 다섯번째 작품인 배우 오마 사이가 연기한 삼바는 더욱 애처롭다. 남의 신분으로 일을 하던 현장에서 단속 경찰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가 하면,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음식을 주워 먹어야 하지만 프랑스를 사랑하는 ‘애국자’ 삼바. 10년이나 프랑스에서 거주하던 그가 결국 귀국권고를 받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새 출발을 꾀해야 하는 결말은 화가 나기까지 한다. 사람들은 해피앤딩을 원하지만 프랑스의 실상은 절망이라는 걸 말하려는 것일까. 결국 <웰컴, 삼바>는 반어적인 제목임을 알게 된다.
삼바든 앨리스든 둘 다 전쟁 같은 현실에서 각자의 삶을 견뎌야 한다. 모두에게 삶은 녹록치 않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인생에 건넨 손은 팍팍한 삶에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모두가 격의 없이 어울린 이민자센터의 파티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다.
3.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 2015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 머릿속에서 변하는 감정의 비밀에 대해 궁금한 적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가지 감정이 살고 있다. 매일 생성되는 새로운 기억은 구슬 모양으로 기억 창고에 저장되고, 기억이 뭉쳐 몇 가지 성격을 형성하고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거나 중요한 기억은 핵심기억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결론적으로 상영관에서 대여섯살의 아이들은 흑흑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상적인 영화였다. 특히, 라일리가 어린 시절 상상으로 만들어 낸 '딩동'은 코끼리 코에 솜사탕 몸통, 고양이 꼬리, 여기에 귀여운 돌고래까지 합쳐진 귀여운 캐릭터이다.
시골에서 샌프란시크코 대도시로 이사한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가 겪는 기쁨과 슬픔 등의 복잡한 설정을 직관적으로 풀어낸 캐릭터와 공간의 디자인이 탁월하다.
무한 긍정의 기쁨이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우리가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라는 말도 중요하지만 슬픔의 가치도 놓치지 않고 챙기는 영화 내용이 좋다. 내 기억 저장소에 저장된 핵심기억과 영구 기억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영화.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걸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_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4. 상의원(2014)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공간 ‘상의원’에서 30년 동안 왕실의 옷을 지어온 상의원의 어침장 조돌석(한석규)과 궐 밖에서 옷 잘 짓기로 소문난 이공진(고수). 어느 날 왕의 면복을 손보던 왕비(박신혜)와 그녀의 시종들은 실수로 면복을 불태우게 되고 왕비의 청으로 하루만에 공진을 불러들여 왕의 대래복을 수정해 올리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묘한 호감과 아슬아슬한 관계(예전 기준으로 보면 신분의 차이가 어마무시하지만 옷 치수를 재던 그 장면은 아찔..)로 왕의 의심까지 사게 된다.
모차르트가 되고 싶었던 살리에리 같은 두사람의 운명적 만남. 처음엔 돌석을 잘 따르는 공진에게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후반부에는 그의 천재성에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화려한 궁중 옷을 보는 시각적 재미와 연출도 좋으나 이원석 감독 특유의 오바스러운 유머 코드를 삽입한 것은 전체적인 무게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아쉽다. 왕 역할의 유연석은 어린시절 형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왕비를 외롭게 하는 소심하고 유약한 인물이지만 그 광폭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한듯하여 기특하다. 물론 주인공인 한석규와 고수의 연기도 나무랄데 없다.
5. 더 롱기스트 라이드(The Longest Ride, 2015)
별 기대하지 않은 영화에서 감흥을 얻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다.
똑똑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대학 4학년 졸업반 여주인공 소피아(브릿 로버트슨)와 시골의 카우보이 남자 루키가 대회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곧 대도시로 떠나는 소피아가 루키와의 사랑을 망설이는 사이. 우연히 교통사고로 목숨을 구해 준 루크 할아버지(스콧 이스트우드)의 편지를 소피아가 읽어주면서 영화 속 영화로 액자 구성으로 전개된다.
<남자가 신청한 첫 데이트가 호숫가에서 싸온 음식을 먹으며 단둘이 랜턴을 켜고 밤 늦게까지 대화하던 장면, 정말 낭만적이었다>
<노트북>의 원작자인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안녕 헤이즐> 제작진이 만든 영화란 걸 보고 나서 알았다. 어찌보면 평범한 로맨스 영화인데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인생의 주제를 지루하지않게 따뜻하게 잘 담은 영화였다. 4명의 남녀 주인공들의 스토리 교차가 시대를 넘나들며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으로 잘 짜여졌고 '사랑은 희생을 요한다'라는 대사가 이 영화의 핵심메시지.
결국 소피아가 직장을 포기하고 마지막 경매를 통해 루크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로 이들은 해피엔딩.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되는 영화였다.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빠져드는 두 남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던 영화였다.
올 여름이 가기전에 새로 개봉한 <러브 앤 머시>, 최동훈 감독의 <암살>, 놓치고 보지 못했던 <안녕, 헤이즐> 같은 영화를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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