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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까닭은?

by 미돌11 201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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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일주일간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머무르면서 한 권의 책을 써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공간을 선택할 것 같은가?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별과 만남의 공간,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공항'을 선택했다.

그가 집필한 장소인 히드로 공한 5번 터미널


알랭 드 보통이라는 걸출한 작가와 그의 후원자이기도 한 영국의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인 BAA사의 최고경영자의 부탁으로 아무런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일주일만 공항의 터미널 5에서 머물면서 책을 써주기를 부탁하면서 이 책은 탄생하게 된다. 거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었고 '공항의 여러 사업에 관하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분명하게 확인까지 해 주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그는 일주일동안 공항 터미널 5의 전용 책상이 마련된 곳에서 된 공간에서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나가고, 대화를 해나간다. 그에게는 특별히 공항의 직원들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는 게이트 너머의 은밀한 공간까지 둘러 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공항 내의 호텔에 머물면서 공항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말이다.

Bestselling philosophy author Alain de Botton works at his desk in the check-in area of Heathrow airport during his week as writer-in-residence.

룸서비스 메뉴를 보며 에도 시대의 하이쿠를 연상하는 유머, 공항 CEO(그가 경영난을 이유로 비즈니스 클래스의 식후 공짜 초콜릿을 없어 영국 언론이 사흘간 들끓었다고 ^^)를 만나고 나서 출판계와 비교하며 '둘 다 순이익이 아니라 영혼을 흔드는 능력으로 인류의 눈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활 필요가 있다'면서 CEO와 농담을 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여행을 좋아하고, 현대적 건축물에 대한 그의 안목과 지식, 공항에 대한 애정을 감안하면 그리 어색한 제안은 아닌듯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주인공이 여자 친구인 클로이를 만난 장소 또한 공항이었고, '여행의 기술,에서도 공항에 대한 애정을 다음과 같이 아낌없이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는 터미널 5에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볼 수 있는 작은 책상을 놓고 글을 쓰기도 하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누군가는 화장실의 위치를 묻기도 ^^) 접근, 출발, 게이트 너무, 도착이라는 네개의 장을 통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부푼 가슴을 안고 떠나며, 인생이 있으며, 만남과 이별이 반복된다. 

알랭드 보통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과 콩코드 룸에서 엿본 부자들과 그곳을 청소하는 필리핀 청소부 사이의 묘한 이질감, 구두닦이의 심리적 사명, 테러리스트를 색출하는 보안팀의 여성 책임자, 수하물 담당자와 비행기 조종사 그리고 공항 교회의 책임 목사와 CEO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우리가 수십번 들락거렸을 바로 그 공항의 보이지 않는 면면과 공항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점들을 특유의 놀라운 위트와 통찰력을 발휘하여 흥미롭게 해체하여 들려준다. 공항이라는 거대한 기술의 집결지에도 이를 움직이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의 일에는 저마다의 철학과 이유와 인생관이 베어나온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훌륭한 에세이가 될 만하다.


이런 알랭드 보통의 뒤에는 항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리처드 베이커가 따르고 있었다. 보통의 책이 일주일은 잡고 천천히 읽어야했는데 이 책을 내가 하루만에 쓱쓱 끝낼 수 있었던 공로는 반 이상이 그의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단조로운 공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는 착각이 일 정도로 항상 같이 움직였다는 느낌을 준다.

사진은 무 멋을 내거나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고 이것이 보통의 글과 매우 잘 어울려 마치 내가 직접 공항 구석구석을 돌아본 것 같은 느낌을 줘서 '아~ 이런 느낌의 사진도 참 좋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만약 글로만 이 책을 봤다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구체적인 사물들을 직접 보고 나면 쉽게 공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나는 수십번 공항을 이용했지만, 기내식이 어디서 만들어져서 항상 어떻게 그리 따뜻하게 배달되는지, 승무원들은 어디서 잠을 자고 오는지, 승무원들이나 청소부들은 어떤 생각과 사명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공항이라는 공간에 대한 우리의 환상을 이용해 이렇게 멋진 책을 내놓고 유혹을 하지만, 실제 이책은 매우 현실적인 인생의 이야기(심지어 죽음까지도)가 담겨있다. 그래서 철학은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그의 책을 보면서 이런 정도의 책이라면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언젠가? ^^)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이 프로젝트가 기업과 블로거 간의 관계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항이라는 곳은 현재 기술의 결정체이며 거대한 콘트리트 무생물이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오고 가는 여행자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가슴 따뜻한 인간이라는 사실. 그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공항 측은 홍보 자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알랭 드 보통이라는 개인을 내세웠다. 그에게 어떤 상황이나 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뿐 글쓰기에 어떤 제한도 가하지 않고 작가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도 내가 추구하는 블로그 릴레이션과 비슷하다.
그들이 원하는 매끈한 '홍보용 메시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무엇을 쓰는지 메시지 컨트롤은 하지 않는다. 회사가 선택한 블로거라면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않을까? 갑자기 내 머릿속에 뭔가 찌릿하는 흥분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이 바쁘게 돌아간다.

[덧1] 이렇게 멋진 책을 내 생일 선물로 해준 bong님에게 다시한번 감사하며, 곧 있을 그녀의 행복한 결혼도 미리 축하하고 싶다. 
[덧2] 이 책에는 한국에 대한 언급 한번, 삼성에 대한 언급이 두번 나올 만큼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높은 듯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전에 채널 뉴스 아시아에서 일했지만 현재는 싱가포르 CNBC에서 일하는 클로이 조와 식사를 했다. 그녀는 지역 시장 동향과 삼성의 사분기 전망을 이야기해주었다. P.31

만일 가나 아크라의 텔레비전 소매점에 가보았다면 사람이 들어간 관과 무게나 크기가 비슷한 삼성 PS50 고화질 플라즈마 텔레비전을 구입해가는 가나 가족의 결정을 우호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P.43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청미래, 2009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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