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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조종당하는 서사 없는 ‘텅 빈 삶’, '서사의 위기'(한병철)

by 미돌11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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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독서모임 주제 도서는 한병철 <서사의 위기>이다.  스토리 중독사회에 대한 진단과 이야기에 대한 앞선 통찰력으로 이토록 예리하게 짚어내다니 정말 놀랍다.

요즘 스스로가 '서사의 위기' 상태인지 차분하게 글 읽기가 힘들다는 것을 절감한다. SNS를 통한 짧은 정보나 숏폼, 넷플릭스 등에 익숙해진 우리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갖고 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파놉티콘(감옥)의 착취의 도구라고 생각하니 다소 섬뜩하기까지 하다. 디지털과의 의식적인 단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서사'란 단편적 정보나 스토리가 아닌 '신화'나 '성경', '시' 처럼 자세한 설명을 자제해 상상의 여지나 틈을 두는 것을 말한다고. 우리가 흔히 말해 온 스토리텔링은 마케팅에서 서사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개념과 완결성'이 없다. '이야기만이 미래를 연다'라는 결론이 흥미롭다. 

 

다소 아쉬운 점은 저자가 독일어로 책을 쓰고 번역을 한 책이라 그런지, 철학 사상 용어가 많아서 개념이 어려워서 그런지 어떤 부분은 와닿지 않아서 반복해서 읽어야했다. 


✅ 인상적인구절


이야기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반면, 소설은 고독과 고립에 처한 개인이 낳은 산물이다. 심리분석이 포함된, 그리고 해석이 곁들여진 소설과 달리 이야기는 서술적이다. (…) 하지만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몰락시킨 것은 소설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정보다. -P.20

디지털화는 시간적 위축증을 악화시킨다. (…) 정보는 시간을 파편화한다. 주의도 파편화한다. 정보는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는다. 가속화된 정보 교류 속에서 정보는 또 다른 정보를 사냥한다. 스냅챗은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찰나의 소통을 몸소 보여준다. 이러한 메신저는 디지털의 시간성을 순수한 형식으로 드러낸다. 오직 순간만이 중요하다. 스냅은 '순간적 현실'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P.45

자신이 그저 노는 중일 뿐이라고만 믿는 포노 사피엔스는 실제로는 완전히 착취당하고, 제어당하고 있는 것이다. 놀이터로서의 스마트폰은 디지털 파놉티콘임이 드러났다. -P50

넷플릭스 시리즈는 강조된 삶의 위험에 상응하는 예술 형식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빈지뷰잉(Binge Watching), 즉 생각 없는 시청이 시리즈 소비를 특정짓는다. 관찰자는 마치 소비 가축처럼 살찌워진다. -P.97

이야기와 달리 스토리는 친밀감도, 공감도 불러내지 못한다. 이들은 결국 시각적으로 장식된 정보, 짧게 인식된 뒤에 다시 사라져 버리는 정보다. 이들은 이야기하지 않고 광고한다. 주목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P.121

시는 모든 개인을 나머지 전체와의 독특한 연결을 통해 고양시키고, 세계 가족인 아름다운 사회, 즉 우주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든다. (…) 개인은 전체에 살고 전체는 개인에 산다. 시를 통해 최고 수준의 교감과 공동 행동성이 생성된다. -P.128

이제는 서사가 상업에 의해 본격적으로 독점되고 있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공동체가 아닌, 소비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우리’를 형성하지 않는다. - P.130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P.137

 

 


한병철은 우리가 억압도, 저항도 없는 스마트한 지배체계에서 자기 삶을 SNS에 게시하며 정보화하도록 조종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름다운 꽃을 봐도 감동을 온전히 느끼며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데 그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유한 이야기를 잃은 사회, 내 생각과 느낌을 말하지 못하고 입력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내뱉는 사회의 끝은 서사 없는 ‘텅 빈 삶’이다. - 출판서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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