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도 불혹을 넘어섰다. 20대에는 경제적 독립과 사랑, 30대에는 일과 육아의 병행, 40대에는 나 자신에게로 관심이 다시 돌아왔다. 이제 슬슬 피부도 늘어지고, 곧 있으면 노안이 찾아올 나이니 늙어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부쩍 서글퍼지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인생'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바쁘게 아둥바둥 사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것인가? 관성이 밀려 그럭저럭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서점에는 공자, 중용 등 중국 고전부터 유명인들이 내놓은 멘토링 등 새로 나오는 인생 자습서로 홍수를 이룬다.
길지 않은 우리 인생에서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옆 길로 새지 않도록 등불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책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 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흡수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글귀나 명언, 충고와 조언을 들어도 결국 어떤 것을 취해 내 마음 속에 새길 것이냐는 것은 나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흔한 말로 결국 어떻게 내 인생을 '나답게 살 것인가' 하는 답은 내가 찾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잡아 끈 세권의 책이 있어 블로그 독자들에게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세권의 책은 '인생'을 주제로 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책이다. 이들에게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1.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
2.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쓰기 훈련을 해왔다는 것.
3. 최소 20년 이상 자신의 일에 꾸준히 매진해 온 사람들이라는 점.
(그리고 셋 중에 두권의 책에 알랭 드 보통이 인용된다는 곳도 공통점)
이들에게 '인생'에 대해 살짝 조언을 구해보기로 해보기로 하자.
# 여덟단어 - 박웅현
책은 도끼다 이후 오랫만에 박웅현 CP가 강연에서 풀어 놓은 인생의 8가지 키워드에 대해 책을 엮어냈다. 올 5월에 나왔다는데 왜 내 눈에는 이제사 띄인 걸까..
이 책을 읽다보니 이상하게 알랭 드 보통의 인생 3부작이 떠올랐다. 결국 알랭드 보통의 '인생 학교'에서 말하는 돈, 일, 정신, 세상, 시간, 섹스 등에 대한 고민과 일맥 상통한다. 이 책은 '자존, 본질,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의 8가지 단어로 나눠 이야기한다. 우리 인생의 고민이란게 결국 그렇게 많지가 않구나.
Be Yourself, Take me as I am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 p.218 불교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호학심사(好學深思). 이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深思)입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말하는 삶.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 p.126 견(見)
불혹은 그 만혹의 시기로부터 꼭 10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제 나이 오십에 드디어 불혹을 맞은 것이죠. 저는 이제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인정하고 긍정하기 시작했어요. 단, 여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삶의 부정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긍정과 내 삶의 긍정을 의미합니다. ‘호주에 가서 매일 바비큐하는 삶 멋져, 잘 나가는 프로그램의 PD도 정말 멋지고, 판사도 좋아 보여, 지리산에서 사는 삶도 괜찮은 것 같아. 그런데 동시에 나도 괜찮아. 아파트에서 딸 하나 키우면서 사는 게 답이 아니라고 누가 그랬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비로소 나의 현재에 대한 존중이 생긴 겁니다.--- p.140
제목부터가 좀 무거운 주제를 가진 책이란 느낌이 들어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정치인 유시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인간 유시민에게는 호감이 있는터라 지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잡았다. 선거에 실패한 후 그가 내 놓은 자전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외로 자신의 뜻이 아니라 출판사의 제안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기획도서인 셈인데 대박을 낸 것이니 그 기획자가 누군지 좀 궁금해 졌다.
이 책을 쓰면서 그의 말을 빌리자면 부끄럽게도 쉰다섯에 진지하게 '내 삶의 원칙'을 생각해 보았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정신없이 휩쓸려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잊고 산다.
이제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지식소매상'이라는 새 명함을 새겨 넣고 인생 후반전을 시작한 그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최근들어 내 삶의 전반부를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 책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명예와 성취가 있다고 해도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것이다. 결국 내 삶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김경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가 취향이 인간 그 자체"라고 했다. 일찌기 내가 영화 프랑스 '타인의 취향'에서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크게 공감했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삐에르 부르디외가 그의 책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서 취향은 선택의 문제일 뿐, 맞고 틀리는 진위나 가치의 문제는 아니므로 모두의 취향은 존중되어져야 한다고 한 점에도 동의한다.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며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가 모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된다. 나는 항상 취향이 없는 사람이란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왔다. 인생이란 뭔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취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17년간 패션 매거진 <하퍼스 바자>에서 편집장 출신 작가인 김경의 발칙한 문체에 끌렸다. 지나친 일과 스트레스로 공황장애에 걸려 회사를 관두고 생계형 작가가 된 김경은 마흔 가까운 나이에 '직장으로 출근할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재택근무자’인 화가 남편과 혼인신고만 한 채, 강원도 평창에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있다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가로이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가도 막상 따분하고 지루한 시간을 참기 어려울 것 같아 망설이는 나와 달리 그녀의 과감한 결단이 부럽다.
그녀는 주류보다 비주류, 우파보다 좌파, 인기직업보다 비인기직업을 좋아한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가치대로 의기양양하게 사는 패배자'를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단, 많이 가난해질 각오를 할 것.
사랑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면, 결혼은 ‘알아본’ 그 사람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더 ‘알아가는’ 거다. 사람 한 명이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평생 한 사람만을 탐구한다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반생 동안 계속되는 우주여행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리석게도 나는 나이 마흔에 아직도 그런 꿈을 꾼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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