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람, 여행"이 자신의 성삼위일체라고 말하는 CBS 라디오 정혜윤 PD. 엄청난 독서광으로 '침대와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독서 에세이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 감각적이고, 지적 유희가 많고, 다소 현학적인 문장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글쓰기 능력만큼은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이 책은 사소한 일상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나의 일과, 기술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다_몽테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그녀가 사랑하는 여덟 명의 친구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녀의 직업인 덕분에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임이 분명합니다. 그녀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신념을 갖고 어려움을 헤쳐나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과연 내 삶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그녀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내 독서량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미덕. 맨 마지막 페이지에 친절하게 설명해 준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또다른 책들"중 읽은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 OTL
1.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 박수용(자연다큐멘터리 감독)
평소 이런 호랑이 사진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누가 찍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내가 비트속을 견뎠던 것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뭔가를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콘텐츠, 콘텐츠 하는데 콘텐츠는 항상 과정 중에 나옵니다.
현실적인 조건 즉 인간의 규칙과 내가 따라야 할 자연의 규칙들 사이의 소통, 이것이 내겐 진정한 마음속 소통입니다. 저 시베리아 우데게족 최고의 신은 엔두리입니다. 엔두리는 바로 화합(harmony)의 신이죠. 내게 화합은 이런 모습입니다. - p.52
우린 오솔길을 걷듯이, 마치 호랑이가 그런 것처럼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노동하고 먹고삽니다. 그러나 자아 속의 소통이 없다면 노동만 하고 살게 되고 맙니다. 자아 속의 소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왼발을 든 채 정지 상태로 5분을 참는 것과 같습니다. 요가나 명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고 구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긴 흐름 속의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법입니다. _p.68
- 관련 기사:
- 심장이 쿵! 내 머리 위에서 호랑이 네 마리가…
- 한겨레
2013.02.22 (금)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실제로 내가 아닌 것이 되어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기와의 거리두기입니다. 이 거리두기에서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이 위기의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의 구경꾼, 평가자, 심판자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P. 115
윤태호 작가가 어느 날 거울을 다시 보기 시작했단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답은 그가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는 우리가 공유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나에서 작품 속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새로운 것. 기발한 것에서, 자기만 아는 것에서 착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만화를 그려가면서 내적 기쁨을 느껴가면서 점점 그는 그가 되어갑니다. _p.157
우리는 결국 디테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정책 결정권자도 아니고, 우리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삶의 디테일 뿐입니다. _p183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온전히 알 수 있게 하는 나의 자리, 장소. 누구에게나 절실히 필요한 그것, 바로 사랑이고 서식지겠지요. 이제 사랑의 고백은 이렇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나의 서식지가 되어줘" _p.195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밀고 나가려면,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했었다는 것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자신감 그 이상입니다. _p. 185
제 관심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청년 유니온 하면서 '인간은 정말 이기적 동물인가"' 의아했던 적이 많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똑같이 아팠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 것을 더 받을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_p.222
여행을 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쁩니다. 그렇게 사진만 찍다 보면 나중에 그곳이 어디였는지 설명도 못합니다. 제 눈으로 사물을 감상하고 제 입으로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자리에는 소비만 남습니다. P.248
경험이 전수의 문제라면 체험은 소비의 문제고, 경험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라면 체험은 그저 감탄사만 남겨두고 자신이 겪은 것을 잊게 합니다.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선 우리에게 시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혹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걸 감내하는 용기 같은 것까지도 필요합니다. _P.249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소장이 자유와 안정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특히 공감이 많이 갑니다. 불안에 대해서도 좋은 일자리를 얻고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쓸모있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자기 착취’를 합니다. 이러한 불안을 이기고 희망을 얻는 진짜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는 불안을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고, 혼자 불안을 극복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불안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친구로 만들라고 말합니다.
자유를 잃으면 대신 안정은 되고, 안정성을 잃으면 대신 자유를 얻고. 그러니까 자유를 불안정과 세트, 안정성은 지루함과 세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겉보기엔 자유롭지만 돈이 없다면 그 자유는 끔찍합니다. P. 278
이제 불안의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불안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오히려 사회적 관계들이 악화되었습니다. 나의 문제이면서 우리 모두의 문제인 이 불안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마치 그 옛날 사나운 동물에게 쫓기던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나운 동물을 만나면 우리는 도망가거나 죽은 척하거나 수풀에 고개를 묻고 동물이 자신을 보지 못하기만 바랍니다. 그러나 용감한 사람들은 도망치면서도 싸웁니다. 돌멩이라도 던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함께 싸우자고요. _p.303
노래를 가장 잘 부르거나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 가장 아름다운 사람, 가장 힘이 센 사람, 가장 솜씨가 좋은 사람,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은 가장 존경을 받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불평등과 악덕으로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 - 인간 불평등 기원론 _루소
"체호프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꾸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넘어지는 건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도 불행하고 다른 이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형제나 가까운 지인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머나먼 타국 흑인들, 중국의 막노동자, 먼 우랄에 사는 노동자의 아픔을 이웃이나 아내가 겪는 불행보다 더 쓰라린 도덕적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다. (…)" _나보코프의 인용문.
천문인마을 전경
이 책은 성공한 사람들이 온갖 역경을 딛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따위의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희망 고민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뜨겁게 치열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치열함,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 성실함, 견딤, 때로는 틀리거나 실패했다는 고백. 이런 것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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