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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ory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미돌11 201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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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가 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하루키를 읽는 인간과 
하루키를 읽지 않는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이 출간 7일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고 난리다. 
하루키는 이제 우리에게 한 사람의 작가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문화적 아이콘이 된지 오래다.
64세(1949년생) 노령의 이 작가는 아직도  '노르웨이의 숲' 스무살 언저리 혼란스러웠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이상 하루키 키드가 아닌 하루키 중년이 다 된 나에겐 대행스럽게도. 

사실 구성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하루키의 초기작 '상실의 시대'와 흡사한 점이 많다.

냉정하면서도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남자 주인공의 성향도 비슷하고 대학시절 룸메이트로 영향을 받은 남자 친구, 연상의 여자 친구, 꿈속의 섹스, 전반에 흐르는 허무감과 상실감, 그리고 열린 결말.

인간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빛이 있다는 기발한 발상이 하루키답다.

고등학교 시절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의 색채 풍성한 친구들과 달리 
주인공 쓰쿠루는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색채가 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믿는다. 
색채 가득한 네 명과 색채가 없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
(多崎つくる)

이름처럼 뭔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다자키 쓰쿠루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떠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당시의 충격으로 좀 뒤늦긴 했지만 이렇게 순례(찾아나서는)를 떠나는 그가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나 역시도 그 시절의 나를 좀 더 용감하게 들여다보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시절의 상처를 채 치유하지 못한 채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쓰쿠루는 대학시절 완벽한 공동체로 어울린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네 명의 친구들에게 갑작스러운 절교를 당하고 충격이 무척 컸다. 이후 상실감, 고독감을 견뎌 낸 후 쓰쿠루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입은 상처로 남에게 마음을 순수하게 터놓지 않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거부당한 이유를 알기 위해 16년 만에 순례를 떠난 여행에서 
자신은 속이 텅 빈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두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오히려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듣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하루키의 작품속에는 꼭 음악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한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가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한다.
'르 말 뒤 페이 = 정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多崎つくる)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 쓰쿠루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마음이 너무도 순수하고 강렬하여 거기에 걸맞은 구체적인 죽음의 수단을 마음속에 떠올릴 수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구체성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 만일 그때 손이 닿는 곳에 죽음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면 그는 거침없이 열어젖혔을 것이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말하자면 일상의 연속으로서.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가까운 곳에서 그런 문을 발견하지 못했다.___ p.8

쓰쿠루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남에게 자랑할 만한, 또는 이렇다 할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 모든 점에서 중용이었다. 또는 색채가 희박했다. ___ p.20

처음 사라를 만났을 때, 어딘가에서 뻗어 나온 익명의 손가락 끝이 등에 있는 스위치를 꼭 눌렀다.  ___ p.26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하고 사라가 말했다. "실례일지는 몰라도 한정된 관심을 가질 대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라도 발견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성취 아닌가요."  ___ p.32

인간에게는 제각기 자신의 색깔이 있어서 그게 몸의 윤곽을 따라 희미하게 떠올라. 후광처럼. 아니면 백라이트처럼. ___ p.108

사람은 변하는 존재일지도 몰라. 우리가 아무리 친밀하게 지내고 가슴을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더라도 실제로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잘 모를지도 몰라. ___ p.175

자신의 존재가 느닷없이 부정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밤바다 속애 내팽개쳐지는 공포. 아마 그 때문에 나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었을 거야.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늘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지. ___ p.343

다짜키 쓰쿠루에게는 가야 할 장소가 없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테제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가야 할 장소도 없고 돌아갈 장소도 없다. 예전에 그런게 있었던 적도 없고, 지금도 없다. 그에게 유일한 장소는 '지금 이 자리'이다. ___ p.419


개인적으로 껍데기를 벗긴 블랙 하드커버 표지가 더 맘에 든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키만의 유려한 문장에 빠져들어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치며 공감하고 있다.  

내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간의 고독, 상실감, 용서와 치유, 그리고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괜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어느 시점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나 자신을 똑바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루키 현상에 대해서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하루키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덧1. 하루키의 여행 방식이 묻어나는 짐싸기 과정. 그리고 사진 찍기에 대한 생각이 재밌다. 

덧2. 하루키를 읽기 좋은 장소가 있다. 늦은 밤 우리집 거실 소파에 스탠드를 켜두고 읽을 때와 햇살 좋은 주말 오전 카페 창가에서 읽을 때의 감흥이 다르다. 여행을 가는 비행기 속이나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읽는 것도 좋겠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호텔 수영장의 풀사이드에서 시원한 칵테일이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앉아 보는 맛이 최고겠지?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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