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빨간 머리 앤'의 광팬이었다. 소설 책으로도 읽었지만, 처음 TV를 통해 접한 빨간머리 앤은 1970년대 명작 만화 시리즈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만화 속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마치 내가 앤이 된 듯한 착각에 심취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종이만화 대신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인터넷 카툰)이 대세다. 특히, 인터넷 문화의 확산으로 만화가 모바일 날개를 달면서 '웹툰'이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 떠오른지는 꽤 된 것 같다. 만화는 이미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함께 웃고 울고 기대 쉴 수 있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포털사이트마다 인기 웹툰 작가를 섭외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그 장르와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판권이 팔려 드라마나 영화화 된 것만 해도 부지기수. 그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만화를 말할 때 동네 어두컴컴한 만화방에서 앉아서 시간 죽이면서 보던 장면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이미 꼰대일지 모른다.
특히, 고달픈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웹툰, '미생'은 얼마 전 누적 조회수 4억 건을 넘어서며 시즌 1을 마감했다. 나 또한 윤석호 작가의 팬으로서 곧 모바일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에 기대가 크다. 누가 만화를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 했던가!
세계 5대 애니메이션 영화제 중 하나인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2013, Seoul 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이 올해로 17회 째를 맞았다. 기존의 대형 박람회장이라는 닫힌 공간이 아닌 명동과 남산 일대의 열린 공간을 축제 장소로 옮겼다.
SICAF 남산으로 가다! 만화로(路!) 애니로(路)!
명동과 남산 일대에서의 거리 축제로 거듭난 SICAF2013은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준비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행사는 크게 CGV명동역과 서울 애니시네마에서 진행되는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와 명동 거리에서 이뤄지는 만화전시, 밀레니엄 서울 힐튼에서 진행되는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마켓으로 구성된다.
먼저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가 열리는 CGV명동역을 찾아 SICAF키즈 작품을 아들과 함께 감상했다. 개막작 <사도>(스페인, 감독 페르난도 코르티조)로 비롯해 33개국 300여 편의 다양하고 우수한 작품이 출품되었다. 우리가 본 시카프 키드 부문 3은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임에도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아들아이도 5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감상했는데 인상적이었는지 그날 저녁 일기에 소감을 남길 정도였다. 그 중에서 우정과 가족에 대한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은 '마법 빗자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이다. 어른인 내가 봐도 빠져들 정도로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이었다. 드림웍스에서 국내 공식 개봉일보다 하루 앞서 초청작으로 선보인 달팽이 '터보'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와 지도를 손에 들고 설레는 모험을 떠나다
영화를 보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중턱에 위치한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을 중심으로 명동역, 서울예술대학교 동랑예술센터, 문학의 집, CGV명동역, 명동역 일대 카페/레스토랑 7곳의 전시장 탐방에 나섰다. 우선, 동랑 예술센터에서 초청장을 보여주니 손목에 노란 띠를 채워준다. 거리 곳곳에서는 열리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표식이다.
올해 반토막이 난 예산으로 근처 카페나 레스토랑의 협조를 얻어 겨우겨우 치뤄진 고육지책이라고는 하나 그리 나쁘지 않은 시도였던 것 같다. 아이와 지도를 손에 들고 스탬프를 찍으러 다니는 과정이 마치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설레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마침 비오는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우산이 공중에 둥둥 떠 걸려있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맞은편 육교 옆 '까르르 동산위의 햇살 만화방'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마치 아이가 좋아했던 동화책 '구름빵'에 나오는 비오는 아침처럼 말이다. 1층에서 잠시 기다리다보니 2층에 공간이 나서 바로 입장해 우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살까 말까 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들어간 건데 의외로 아들아이가 집중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의 우산을 갖는다는 것이 신이 났는지 점심때가 지나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열심인 모습이 참 재밌었다.
▲ 자신의 하나뿐인 우산에 그림을 그리는데 심취한 아이
새로이 조성된 '만화의 거리'에서 열리는 전시 프로그램은 윤승운 특별전, 캐나다 NFB 초청전, 교토애니메이션 초청전을 비롯, 작가들이 직접 준비한 작가참여전, 인기 웹툰 '미생' 탐독전 등이었다.
▲ 교토애니메이션 초청전
과거의 현재의 만남도 참신했다. 문학의 집에서 건담 전시회를 보는 것도 새로운 체험이었다. 전문 작가의 건담 조립과 스케치 등을 강북의 가정집을 개조한 스타일의 전시장에서 천천히 구경할 수 있었다. 건물 밖에 우뚝 선 건담 앞은 아이들의 단골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었다.
추억의 만화와 국내 신작 애니메이션도 준비되었다.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서는 윤승운 특별전 한국 명랑 만화의 거장 윤승운 화백의 대표작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과 악동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고, 레스토랑 <두부>에서는 젊은 일러스트 , 웹툰 작가들이 그린 머크컵과 티셔츠 등을 전시하기도 했다.
'전광수 커피하우스'에서는 키즈카페 '국내 TV 애니메이션 상영전'이 열렸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뽀로로>나 <라바> 등도 만나볼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기획전으로 마련된 '추억의 만화영화 감상실'에는 로보트 태권V, 원더 공주, 주먹 장군 등 오래된 장난감으로 가득해 "어릴적 엄마는 이런 걸 갖고 싶어했단다"라고 얘기해 주기도 했다.
주민 친화적 축제로 거듭나는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회 기간 중 명동과 남산 일대는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듯 보였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맞은편 육교 옆 '까르르 동산위의 햇살 만화방' 공중에는 만화가들과 어린이들의 만화를 프린트한 우산들이 대롱대롱 매달렸고, 작은 게스트 하우스 담벼락들도 학생들이 만화로 재치있게 그림을 그려 칙칙한 골목에 생기와 상상력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스스로 찾아내는 방식이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무척 잘 어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거리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도움을 주는 선에서 협조를 얻어 진행해야 하다보니 좁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전시를 즐기기 어렵거나 카페 2층에서 우산 그리기 행사에 참여하는 대기자들 때문에 진행 스태프들이 1층 카페 영업에 지장을 줄까 눈치를 보는 게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카페 브라운 하우스에서는 ‘미생탐독전’이 열려, 팬으로서 반가웠다. 우리가 카페를 찾았을 때에는 '미생'의 명장면 명대사를 벽과 기둥에 붙여 전시하고 있었으며 카페에는 자리마다 아이패드로 작품 감상을 할 수 있어 잠시 쉬어가며 목을 축일 수 있었다. 한 켠에는 미생의 모바일 영화 6편도 감상할 수 있는 TV 감상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27일 토요일에 사인회를 하고 엽서와 단행본을 증정하는 행사가 있었다는데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다.
팜플렛에 포함된 8개의 스탬프를 모으면 선물을 주는 재밌는 행사도 진행하고 있어서 참가자들이 다리 품을 파는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SBA 한군데를 지나치고 못가는 바람에 미션 완수를 못해 아쉬웠지만, 너무나 꽉 찬 볼거리와 체험을 한 덕에 오랫만에 꽉 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새롭게 시도된 '만화의 거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콘텐츠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만 잘 보완이 된다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인 행사로 더욱 더 탄탄하게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준비위 측에서 내년에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국제 만화 페스티벌로 육성하고 한국관광공사 및 하나투어와 제휴해 해외 관광객도 유치한다고 하니 더욱 더 성황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 행사명: 2013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SICAF
- 홈페이지: http://new.sicaf.org/xe
- 장 소: 남산과 명동 일대
- 기 간: 7월23일 ~ 7월 28일
- 시 간: 오전 10시~오후 7시 , 28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티켓 일반/어린이/중고생 모두 6000원, 단체할인 4000원
* 이글은 하나투어 여행 웹진 '겟어바웃'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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