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들은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심리학자인 하지현 박사(건국대 교수)가 마음이 춥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심야치유식당'이라는 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지 1년 2개월 만에 다시 2편인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를 펴냈다기에 서점에 간 김에 업어와서 지난 주말에 다 읽었다.
사랑 참 어렵다. 사랑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결해 줄 수 있나?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제 사랑이란 조금도 낭만적이거나 운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사랑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무척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에서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모습도 보이고, 백 퍼센트의 사랑을 기다리는 당신에게'라는 서문이나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실제로 '노사이드'에서 철주가 틀어주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롤러코스트의 <습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빌리조엘의 <피아노맨>과 같은 노래를 들으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늦은 밤 그 카페(술집)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 책에는 심야 치유 식당 '노사이드'에 찾아온 다양한 인간 군상들 - 사랑에 배신당하고 허우적거리고 두려워하는 - 의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 철주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그가 막상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도 인간적이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교보문고의 특별 코너, 책에 방향제가 들어있다.
사랑을 시작하기 위한 실질적인 충고들
저자는 사랑을 호르몬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변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결혼을 앞둔 시점까지 누구나 마주하는 사랑에 대한 문제를 어떤 심리적 태도로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도 그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현대인은 자기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을 주도하여 개인의 행복을 의식적으로 최대한 실현시키고자 한다.
-크리스티안 슐트, [사랑의 코드]
심리학자 하지현이 말하는 사랑을 대하는 5가지 단계(출처: Yes 24리뷰)
1. 초기 단계, 애매함을 견디면서 가능성을 탐색하기
애매함을 견디는 능력은 내공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그냥 안고 갈 수 있는 능력. 사실 판단해야 할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그냥 해결해주는 것이 참 많다. _65쪽
2. 진입 단계, 고백에 대한 환상 내려놓기
마음을 다 준다는 말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마세요. 서로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받을 수 있는 만큼 받고 딱 그만큼을 감사하게 여기는 것, 그러면서 그 폭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 그게 사랑 아닐까, 집착이 아닌가 _228쪽
3. 관계구축 단계, 수동성 버리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난주 씨가 안 돼, 싫어, 라고 말해도 아무런 보복도 일어나지 않아요. 최소한 여기서는요. 이곳은 난주 씨의 재활과 부활을 위한 인큐베이터가 될 거예요. 이제부터 예스맨, 영혼이 없는 사람, 수동적인 무색무취의 여성이 아니라 까칠한 난주 씨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도울 거예요. _142쪽
4. 성숙 단계, 상대방과 조금씩 경계를 허물며 가까워지기
성숙이란 의존적인 사람이 독립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의존성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이다. _67쪽
5. 현실화 단계, 현실적인 관계를 인정하기
한 사람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타인에게 쏘아서 비춰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렇지만 현실 속의 타인은 자기 주관이 있다. 또 상대방에게 쏘는 자신의 욕망의 이미지는 현실 속의 상대와 거리가 있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_100쪽
사람들은 사랑의 완성이 결혼인 것처럼 미친듯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결혼이 얼마나 나 자신과 상대방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는 사랑 대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이 결혼생활을 지탱하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나저나 세상 참 불공평하다. 서울대 의대 박사 학위에 유학파에 국내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권위를 인정받는 저자가 어려운 정신분석학 용어를 빼고 이처럼 담백한 소설을 써 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전문 소설가 못지 않은 재능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그의 바람처럼 '심야치유식당'이 아직도 사랑을 기다리는 많은 싱글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베이스 캠프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하기에 결코 늦은 시간이 없다'라는 희망 말이다.
[관련 글]
2011/07/17 - [Bookmark] - 마음의 허기가 지면 찾아가는 곳, 심야 치유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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