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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개관 10년을 맞는 시네큐브 광화문이 문을 닫는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시네큐브 광화문은 내게 영화에 대한 관점을 키워줬고, 양질의 작지만 알찬 영화들을 소개해 줘 내가 더욱 영화를 사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곳이다. 퇴근 후에 회사 동료가 맘 맞는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휴일이면 친구나 연인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영화를 보기도 했고, 때로는 여름 휴가에 맘 먹고 혼자 가서 맘 편히 몇 편
씩 보기도 하던 곳이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 애착을 보인다는 건 좀 우습긴 하지만 공간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낮은 천정, 조용하고 내성적인 분위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습도와 온도, 영화관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팝콘과 콜라 같은 음식물 반입 불가 원칙. 초반에는 광고도 없이 정시에 시작하고 영화가 끝나고 불도 켜주지 않던 이 영화관이 낯설기도 했는데 말이다.
시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언제라도 불쑥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의 부모님처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나를 가벼운 흥분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시네큐브 광화문'을 사랑하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 개인적 사정으로 영화관을 자주 찾지 못하고 집에서 하나로 TV를 통해 영화를 보다보니 시네큐브에 발걸음이 뜸했는데 이런 뉴스를 접하니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내가 인상깊게 본 영화들을 꼽아보니 이정도인듯하다.
내가 처음 시네큐브 광화문을 찾은 것은 99년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나탈리 베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를 보기 위해서였다. 제목이 좀 자극적이긴 해도 결코 포르노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영화였다. 다음으로 본 건 내가 아직도 최고의 영화중 하나로 꼽는 2001년에 본 '타인의 취향'. 이 영화로 난 완전히 시네큐브의 팬이 되어버렸다.
'최고의 록 뮤지컬'이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주목 받지 못하고 사라진 '헤드윅'같은 영화를 재상영하기도 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제 3세계의 영화나 한국의 비주류 감독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시네큐브였다. (그 비주류가 지금은 주류가 되었지만 ㅎㅎ)
평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내가 좋아하는 영화관에서 내 취향의 영화들만 모아서 하루쯤 비워서 보는걸 좋아했는데..이제난 어디로 가야하나 ㅠㅠ 신촌의 아트 하우스 모모로 옮겨간다고 하니 앞으로는 그쪽으로 가야하나.(확인해보니 시네큐브 광화문 폐관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방빼고 나가는 것이었군요. 여튼 앞으로 어떤 영화관으로 운영되는지 지켜봐야할듯.)
가끔은 생수 한병이나 아메리카나 커피 한잔을 몰래 숨겨 들어간 홀짝홀짝 마시며 영화를 보던 따뜻한 추억이 있는 곳. 씨네큐브 광화문...굿바이~
[덧 1] 내 이메일로 날아든 백두대간의 절절한 메시지가 마음을 흔든다.
시네아트 홈페이지에 올라온 분노에 찬 댓글들
[덧 2] 흥국생명과 시네큐브 광화문 간에 어떤 마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진실게임으로 번지고 있다니 앞으로 추이를 지켜볼 만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영화관에 애착을 보인다는 건 좀 우습긴 하지만 공간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낮은 천정, 조용하고 내성적인 분위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습도와 온도, 영화관의 상징이라고 할만한 팝콘과 콜라 같은 음식물 반입 불가 원칙. 초반에는 광고도 없이 정시에 시작하고 영화가 끝나고 불도 켜주지 않던 이 영화관이 낯설기도 했는데 말이다.
시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언제라도 불쑥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고향의 부모님처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나를 가벼운 흥분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시네큐브 광화문'을 사랑하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 개인적 사정으로 영화관을 자주 찾지 못하고 집에서 하나로 TV를 통해 영화를 보다보니 시네큐브에 발걸음이 뜸했는데 이런 뉴스를 접하니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내가 인상깊게 본 영화들을 꼽아보니 이정도인듯하다.
- 터치 오브 스파이스- 향신료에 담긴 세월의 쓸쓸한 흔적 2005/12/03
- 외출 - 외면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역설 200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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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취향 2001년 여름
-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2000/12
우리는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 그것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며 살 권리가 있다. 취향의 권리, 그것은 곧 의무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이란 뭔가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취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사람의 취향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그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리라.
'최고의 록 뮤지컬'이었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주목 받지 못하고 사라진 '헤드윅'같은 영화를 재상영하기도 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제 3세계의 영화나 한국의 비주류 감독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시네큐브였다. (그 비주류가 지금은 주류가 되었지만 ㅎㅎ)
평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내가 좋아하는 영화관에서 내 취향의 영화들만 모아서 하루쯤 비워서 보는걸 좋아했는데..이제난 어디로 가야하나 ㅠㅠ 신촌의 아트 하우스 모모로 옮겨간다고 하니 앞으로는 그쪽으로 가야하나.(확인해보니 시네큐브 광화문 폐관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방빼고 나가는 것이었군요. 여튼 앞으로 어떤 영화관으로 운영되는지 지켜봐야할듯.)
가끔은 생수 한병이나 아메리카나 커피 한잔을 몰래 숨겨 들어간 홀짝홀짝 마시며 영화를 보던 따뜻한 추억이 있는 곳. 씨네큐브 광화문...굿바이~
[덧 1] 내 이메일로 날아든 백두대간의 절절한 메시지가 마음을 흔든다.
시네아트 홈페이지에 올라온 분노에 찬 댓글들
[덧 2] 흥국생명과 시네큐브 광화문 간에 어떤 마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진실게임으로 번지고 있다니 앞으로 추이를 지켜볼 만한다.
백두대간·흥국생명 '씨네큐브 진실게임' - 조선닷컴(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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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 [My Story] - 내 청춘의 아름다운 영화 16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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