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단 두명인 영화는 난생 처음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과학자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는 우주에서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군분투 끝에 지구로 돌아온다. 스토리는 간명하다. 여기에 동료 우주 비행사로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베테랑 임무지휘관으로 잠시 등장해 끝없는 수다를 늘어놓다 갑자기 사라진다. 스토리는 이게 전부다. 놀라운 특수효과로 가득한 SF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애초부터 3D영화로 기획되어 광활한 우주의 공간감을 충분히 느끼게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2D로 보아도 충분한 리얼함을 갖고 있다. 영화 초반에는 지구와 우주를 배경으로 사실적인 장면의 넓은 시야를 보여주더니 점점 라이언의 헬멧 속으로 들어와 그녀와 내가 동일시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심지어 나는 라이언의 헬맷을 통해 보여지는 우주의 모습에 토할 듯한 어지러움과 공포를 느꼈다.
4살 짜리 딸아이를 놀이터 미끄럼 사고로 허무하게 잃고 표류하듯 살아가던 그녀. 그녀에게 이 우주는 왜 생겨났는지, 매일 치열하게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저 무의미하게 회사를 오가고 퇴근해서는 계속 드라이브를 할 뿐이다. 중력에 반하며.
이 단순한 영화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척이나 묵직했다. 우리 삶의 근원적인 질문,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가...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혼자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 덩그라니 놓여진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될까?
관제탑과의 교신도 포기하고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잡아준 건 라디오 주파수에 실려오는 개짓는 소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그것들을 담고 있는 지구에서의 추억이었다. 우주에서 그 순간 라이언이 찾은 답은 단순했다. 그냥 구명 캡슐에서 불타 죽을지,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 모험담을 이야기할지 선택에 놓이자 그녀는 지구로 귀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이 소리가 이것이 알고보니 에스키모인과의 교신이었다니. (출처: 자그니 블로그)
산다는 건은 다른 누군가와 접속하고 연결되는 것이다.
우주공간에 홀로 고립된다면 그건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도 죽은 딸이 돌아오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여전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땅에 발을 굳건히 내딛고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숙명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묵직한 메시지다.
[덧]
<그래비티>를 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했다고 하고
한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이소연씨는 씨네 21의 영화평을 부탁했을때 "<그래비티>가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무서운 영화였다.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객관적인 무언가를 말할 수 없다"며 거절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리얼함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 명대사
자식을 잃은 것보다 큰 슬픔은 없지. 하지만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해. 두발로 딱 버티고서서 살아가는 거야. - 맷
휴스턴, 내겐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내일 고향에 돌아가서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거나 아니면 10분 안에 불타 죽거나. 어느쪽이든 광장한 여행이 될 것이다. - 라이언
# 한줄 감상평
- 이동진 영화 평론가: 어떤 영화는 관람되는게 아니라 체험된다. 경이롭다. (상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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