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에 간행된 빅토리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장발장의 인생 이야기로 원작보다 뮤지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오죽하면 우리 남편도 뉴욕에서 유학할 때 본 적이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뮤지컬이 너무 지루해 악몽같았다며 이번에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의를 거절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보게 됐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워낙 호평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선입견이 생길까봐 영화 정보도 챙겨보지 않고 극장에 갔다. 집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CGV 여의도는 연말에다 주말 저녁이라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찬 모습이었다. 하긴 나도 보고 싶은 영화가 딱 이것밖에 없긴 했다.
주인공인 휴 잭맨이 엑스멘의 울버린이란걸 영화 중반이 되어서야 할게 될만큼 깜깜했지만, 뮤지컬을 영화화한 방식이다보니 줄거리와 귀에 익은 곡들로 금새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은 대사는 거의 없고 40여 곡의 노래로 꽉 차 있는데 대부분이 배우들이 직접 부른 노래로 채워져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이상하게도 전혀 따분하지가 않았다. 참 신도 불공평하시지..얼굴도 이쁘고 잘 생긴 배우들이 연기에다 노래를 다 잘하는겨 ㅠㅠ (후문에 노래 잘하는 배우로 뽑아 전문 트레이닝을 했다고.)
보통의 뮤지컬 영화가 연기 후 후시 녹임을 하는데 비해 이 영화는 최초로 직접 촬영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되어서인지 캐릭터의 감정이 노래에 잘 스며 더욱 완성도 높은 영화로 태어난 듯했다. 뮤지컬은 보통 노래는 듣지만 먼 곳에서 보게 되므로 배우의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 없는데 영화는 대형 스크린 가득 배우의 얼굴을 통해 섬세한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팬틴 역의 앤 해서웨이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부른 <나는 꿈을 꾸었네>(I dreamed a dream)를 들을때는 짜릿한 전율이 일 정도였다. (수잔 보일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영롱하게 부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이 가슴앓이를 담은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는 피겨퀸 김연아가 프리 프로그램 곡으로 선정해 많은 화제를 모은 노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청년 혁명가들이 거대한 바리케이트 위에서 군중과 함께 부르는 노래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웅장한 스케일과 묵직한 메시지로 절로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것 같다. 19세기 유럽 비참했던 프랑스 7월 혁명의 시민군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가슴을 때린다. 자유와 희망을 위해 목숨을 던져야했던 저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 사람들의 노래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그대들의 심장소리가 북소리가 되어 울려퍼질때
이제 곧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테니
내일이 오면.....
영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경험이 처음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남녀가 이별하는 슬픔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의 원죄(누가 장발장에게 돌을 던지는가), 인간애, 딸에 대한 부정(父情), 혁명가들의 동지애, 진정한 용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희노애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코제트 역의 소녀도 무척 인상적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라는 선입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보고나면 1만원이란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로 장담한다.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도 좋은 인생의 몇가지 교훈을 전해주는 벅찬 감동을 주는 영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리는 진눈깨비 같은 눈을 맞으며 오랫만에 설레임을 느꼈다. 혼자라서 오히려 더 다행스러웠다.
<영화 줄거리>
빵 한 조각에 대한 유혹으로 19년 동안 감옥에 수감된 뒤 영원히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 장발장(휴 잭맨)은 운명의 여인 판틴(앤 해서웨이)을 만나지만, 병약한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딸인 코제트(아만다 시프리드)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장발장은 경감 자베르(러셀 크로)의 끈질긴 추적에 맞서 자신과 코제트를 지켜내려 한다.
주의 사항: 물 한병을 다 마시면서 영화를 봤더니 2시간 30분의 긴 상영시간 때문에 후반부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 겨우 참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물도 많이 마시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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