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빠른 전개와 심리묘사가 풍부해 3시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용산 CGV 아이맥스로 보고 싶었는데 지인들과 수지 롯데 수퍼플렉스 관에서 보았다.
영화의 시작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넘겨준 후 평생 고문당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원폭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영화이자 미국의 전쟁을 비판한다.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관통하는 주제를 묵직하게 밀어부치는 야심찬 거장 감독.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전기를 바탕으로 2개의 청문회가 흑백의 교차 구조의 플롯으로 전개된다.
"플롯 = 세상을 보는 시각과 관계를 보는 눈이 다르다."
장관이 되려는 스트로스의 상원 청문회 (흑백)
오펜하이머의 보안승인 청문회 (컬러)
오펜하이머의 성품은 천재 특유의 오만함으로 타인의 감정에 둔감해 실패했다.
그가 정치인 스트로스(로다주)을 적으로 만들면서 원자력에너지 청문회에서 낱낱이 발가벗겨지면서 파멸해가는 인물이다.
역시 인간관계는 적을 만들면 언젠가 발목을 잡히게 되어 있다.
오펜하이머는 영화에서 많은 인간적 모순을 껴안고 있다.
- 성공에 도취해 농담으로 실언
- 인류의 절멸시킨 총책임자의 윤리적인 죄책감
- 비윤리적인 내연녀와의 관계와 좌파성향
- 평범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오만함.
문과 인간과 이과인간의 충돌과 대립을 보는 듯하다.
역사의 주인공은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정치인(권력자)들은 뻔뻔하고 무지하며 오만하다.
(대통령은 투하한 장소도 정확히 모르고 교토는 권력자의 신혼여행지라며 빼라고 지시한다. )
나치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으나 멸망해버려 결국 일본에 투하해 종전했고 한국은 광복을 맞았다.
이후 러시아와 미국의 끝없는 핵무기 경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인상적인장면
1. 트루먼 대통령과의 면담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
"징징대는 애는 여기 들이지 마."
원폭을 개발한 그는 정치인에 비해 평범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2. 딸의 얼굴 클로즈업
폭탄 투하 성공 후 연구원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단상 뒤가 흔들리고 여성의 피부가 벗겨지는 장면은 섬뜩한 경고같다.
감독은 자신의 딸을 출연시킨 이유로 폭탄이 결국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경고였다고.
3. 연못가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스트로스가 자신을 험담한다고 오해하고 질투해 이 모든 파멸의 씨앗이 된 반전 장면.
그의 오해와 달리 사실은 두 과학자의 윤리적인 고뇌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상이 자네를 충분히 고통스럽게 벌하고 나면, 언젠가 이 세상은 자네를 불러 성대한 연회를 개최할 걸세.
근사한 곳에서 자네를 위한 연설도 해주고, 상도 수여하겠지. 사람들은 자네 등을 토닥이며 이제 자네는 용서받았다고 할 걸세.
그러나 기억하게. 그 모든 것은 자네를 위한 게 아닐세. 그들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베푸는 것이지.
이제 당신이 당신의 성과에 의한 결과를 직면할 차례야."
4. 엔딩 장면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으면서 권력의 도구였다는 것을 깨달은 오펜하이머.
결국 어떤 위대한 인간이든 모두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광이 터지지 않도록 화장실 꼭 다녀오고 커피는 피할 것.
엄청난 장면과 등장인물 간의 복잡한 관계가 다소 어지럽고
예기치 않은 결정적 증언을 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라미 말렉과 플로렌스 퓨, 맷 데이먼 등 익숙한 얼굴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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