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국의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뽑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인상적으로 읽고 작가 낭독회에 다녀오게 되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선유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이었는데 마감 후에 혹시나해서 대기신청해 놓은것이 덜컥 당첨된 것.
토요일 오후 2시 낯선 길을 찾아 선유도역에 내려 도서관을 찾았다. 주말에 이런 멋진 행사를 주최한 공무원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이날 행사에서는 2023년 상반기 발표예정인 미발표작 2편을 낭독해주었다.
그의 문장은 담담하게 시작되지만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어느새 눈물이 차오른다.
미발표작은 발표 직전까지 계속 고쳐쓰는데 원본에 수정을 가하지 않고 완전히 다시 쓴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날아가는 새와 소설의 플랫에 관한 짧은 이야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말한 "시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명제에 대해 소설가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았다.
제주도 가파도라는 섬에서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과 파도를 관찰하던 작가는
새가 날아가는 행로를 보고 직선으로 가지 않고 삐뚤빼뚤 가더라도 결국은 목적지에 다다른다.
인생은 결국 결말을 알고나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1) 소설은 결말을 알고나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비극이냐 코메디냐
2) 결심을 해야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다. 결과가 희극이면 중간에 많은 시련을 끼워넣을 수 있다.
인간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 순차적(단선적)으로만 현재를 기준으로만 이해하는데
만일 미래의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본다면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현재의 고통은 과정에 불과한 것이니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소설을 쓸 때 그는 두번 쓴다고 말한다. 인생을 두번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좌충우돌 그냥 살아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결말의 관점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면 시선이 달라진다.
지금 나에게 당면한 문제가 1년 뒤 혹은 10년 뒤에도 나에게 중요할까?
아마 거의 대부분이 해결되었거나 해답을 알게 되어 좀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10년 전의 나 자신에게 암울했던 현재의 시야에 갇혀서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 시간에 대한 작가의 실험
1) 날짜 다이어리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적어보아라.
1주일 뒤면 대부분 해결되어 있다. 자의든 타의든.
2) 결말을 알고 있는 나에게 해결을 부탁해보아라.
당시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3) 해결책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라.
지금 이순간에 빠져 있지 말고 시야를 넓게 보아라.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지나갈 거야"
93년 시로 데뷔해 20년 넘게 매일 글을 쓴 그가 작년에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설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당시대 최고 소설가의 겸손이다.
이날 사인회에 대비해서 사간 장편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에 저자 친필 사인을 받았다.
이 책에서 다룬 백석의 선택이 당시에는 최악이었고 실패자로 낙인 찍혔지만
그가 만일 미래를 알고 있었다면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영광에 이르는 과정이니 기꺼이 감수할 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로 백석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사랑받는 시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밖에 현장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답변도 기록해본다.
* 현재 관심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는 법을 고민 중이다. 팬데믹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 경제적 부의 축적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니 물질적 풍요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가?
* 자신의 소설 주인공 중 좋아하는 인물은?
코로나를 관통하면서 겪었던 시대적 공포나 막막함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집단적인 문제라고 인식함.내가 농사, 빵, 운전을 하는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 좋아하는 영화나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폴오스터를 좋아한다. 68세대의 성실한 직업 소설가를 좋아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매우 훌륭하다. 글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쓰면 잘 할 수 있을 듯. 의자에 앉아 바르게 글을 쓰는 자세나 오래 쓰는 법. 나는 키보드 연주자처럼 두드리면서 몸으로 글을 쓴다.
* 낭독회를 하는 이유
강연회는 부담스러워 낭독회가 독자와 만나는 자연스러운 방식인것 같아 용기내 참여한다. 미공개작을 낭독하는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계속 글을 고쳐쓸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글을 여러번 고쳐 쓸수록 좋아진다.
아무리 내향적인 성향의 작가라 해도 글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욕구는 어느 연예인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낭독회를 통해서 독자와의 접점을 꾸준히 유지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인상적인 문장
📍이토록 평범한 미래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은 여기에 있다." - 인간의 정체성의 허상이다. 언어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내 앞의 세계를 바꾸는 방법이지요. 다른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평소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도 좋구요. 서핑을 배우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 결심만 해도 좋아요. 아무런 이유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무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하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
📍난주의 바다 앞에서 (정난주와 손유미)
"그 하루하루는 늘 새 바람이 그녀 쪽으로 불어오는 나날이었다고 해."
"세컨드 윈드(제2차 정상상태)
다시 불어오는 바람.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
실패가 아니라 다음 판을 한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
📍진주의 결말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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