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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by 미돌11 2008.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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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일하게 챙겨보고 있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송혜교(준영)과 헤어지자고 말하고 난 후 현빈(지오)이 하는 독백이 아주 잘 와 닿는다. 너무 감상적이지도 너무 쿨~한척 하지도 않는다. 이별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고 가슴 아프게 표현한 문장이 있던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 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들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일 뿐.

이거 가만보니 상실의 시대에서 무라까미 하루키가 흞조린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가 정작 자신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노희경의 아래 시처럼 자신에 대한 애정과 보호본능으로 인해 모든걸 내주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남자친구에게 충실했고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상대를 허기지게 하고 궁극엔 자신이 발뺄 여지를 남겨두고 있더라는 말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거 같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용기가 모자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유죄다.

만약 내가 20대로 되돌아가 간다면 다시 연예를 할 수 있는 좀 더 과감하게 나를 던질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으며,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덧] 이 블로그에서 가급적 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배두나, 유지태 그리고 노희경은 예외를 두기로 한다. 요즘 노희경 작가가 보내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나를 훈훈한게 한다.

[덧2] 노희경의 책을 받고서 기존의 글들이 많고 드라마 대본이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좀 실망했지만 노희경 개인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비밀을 알게된 점은 좋았다. 

[향긋한 북살롱]노희경과 배종옥이 사는 아름다운 세상!


아주 오래 전에 그녀의 저 에세이가 나를 흔들어놓았던 시절이 있었다. 노희경의 오랜 팬으로서 이제 책으로 나온다니 무척 반갑다. 대박 나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 희 경 -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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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노희경 (헤르메스미디어,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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