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너무 좋아서 '맡겨진 아이'를 읽었다.
인생은 침묵할 것인가? 용기를 낼 것인가? 선택의 연속이다.
아일랜드라는 배경이 가난한 탄광촌, 보수적인 카톨릭 분위기, 혹독한 날씨로 음울한 분위기를 잘 묘사한 대목들이 인상적이다. 당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외부환경보다는 인간 내면을 깊이있게 다루되 주제를 강요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작가의 의도, 중의적/ 함축적 의미를 해석하는게 마치 암호 해독을 하는 느낌이 드는 책다.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라는 클레어 키건의 스토리와 문장은 어렵거나 꼬이지 않고 간결하고 아름답다.
처음에는 마치 투명하고 맑은 시냇물을 보는 듯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가 언어에 함축해 둔 의미를 찾으려면 한번 읽으면 보이지 않고 두 번 세번 네번 읽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주요 줄거리>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태어난 소년. 크고 작은 선의를 받으며 자라 다섯 딸의 아버지가 된 그는 석탄 양조장을 운영하며 부지런히 일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수녀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처참한 몰골의 아이들. 크리스마스이브 날, 수녀원으로 배달 간 그는 석탄광에 갇힌 소녀를 발견하고 고민 끝에 집으로 데려가기로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2023년) - 출판사 제공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 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 행위를 저지른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한 중편 소설이다. 다섯 딸을 둔 가장인 펄롱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수녀원에서 참혹한 몰골로 학대당하는 아이를 보고 도움을 줘야 할지 고뇌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풀어냈다. 수녀원과 맞서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을 임신한 가사 일꾼인 어머니를 해고하지 않은 미시즈 윌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삶을 떠올린다. 안전한 침묵과 파국이 예고된 용기의 갈림길 앞에서 번뇌에 휩싸이는 펄롱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인간 본연의 심성에 대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985년 아일랜드 한 도시의 풍경과 소시민의 일상을 세밀화처럼 그렸다.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문장은 공감을 자아낸다. 석탄 야적장을 운영하는 펄롱의 일과를 묘사하며 ‘야적장 정문에 도착했는데 자물쇠가 성에로 덮여 꿈쩍 않는 걸 보고는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침대 속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같은 문장이 그 중 하나다. 담담하게 묘사된 장면에도 하나하나 의미를 담아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게 만든다.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으로 키건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한 인간의 도덕적 동요와 내적 갈등, 실존적 고민을 치밀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 인상적인구절
밤이 왔고 다시 서리가 내렸고 한기가 칼날처럼 문 아래 틈으로 스며들어, 그럼에도 묵주 기도를 올리려고 무릎 꿇은 이들의 무릎을 할퀴었다. p13
"와, 건과일이 바닥에 안 가라앉았어." 아일린이 기쁜듯이 말하고는 케이크에 베이비 파워 위스키를 부어 세례를 주었다.
p46 --> 좋은 조짐을 암시, 세례는 죽음과 부활을 암시
야적장 정문에 도착했는데 자물쇠가 성에로 덮여 꿈쩍 않는 걸 보고는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침대 속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_p.63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19
펄롱은 미시즈 윌순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120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p.121
📕 번역자의 글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명시적으로 말하게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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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킬리언 머피가 제작/주연을 맡아 영화화하고 있다니 기대중.
2022 오웰상 소설 부문 수상
맡겨진 소녀 (허진 옮김)
엄마가 다섯째 아이를 임신을 하면서 집안 형편 때문에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난생 처음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따뜻한 계절을 보낸 이야기 그렸다. 소녀가 한 번도 받지 못했던 보살핌을 받으며 사랑과 다정함을 서서히 느끼는 과정이 맑은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나도 형제가 많은 집의 넷째였던지라 여름방학 때 자주 외갓집에 맡겨진 경험이 있다.
그때의 낯선 경험, 보살핌을 받은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무신경한 아빠, 육아와 노동에 찌든 엄마…
나의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해준 외할머니의 사랑이 생각난다.
“해야 할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하는" 아이로 칭찬을 받는 대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부모의 사랑과 타인의 비밀을 지켜 주는 것에 대한 여백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되는 책이다.
푸르른 계절에 야외에서 읽으니 싱그러운 문장이 더욱 좋았다.
클레이 키건의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들이 좋다.
2009년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5월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다.
키건은 간결한 단어로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나간다.
- 무라카미 하루키
인간의 가능성이 서사의 필연성으로 도약하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 얻게 된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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