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1월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고미술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 2’는 지금껏 유래없는 조선의 병풍을 총망라한 전시로 젊은 층들에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다. 나도 조선의 유교 사상과 충효에 이어지는 제사문화의 피해자인지라 썩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예술 작품이 주는 위안과 아름다움을 경험해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
2017년 오픈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은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차퍼필드의 작품으로 가장 아름다운 사옥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병풍의 나라'라고 불리는 조선에서 병풍은 웃풍을 막거나 파티션의 실용적인 역할 외에도 혼수품이나 교육용, 장식품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2018년에 이어 두번째로 국립고궁박물관 등 각 기관과 개인에게 기증받은 작품 약 50여 점을 모아 한눈에 전시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고미술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 2> (1/26~4/30)
개, 고양이, 십장생, 상상 속 동물 들을 묘사한 디테일한 붓터치와 색감 그리고 보존 상태가 어쩜 이리 좋은건지 무척 신기했다. 당시 생활 양식을 짐작케하는 풍속화나 풍경화, 옛 소설을 대목을 그려놓은 병풍까지 다양한 테마의 병풍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병풍이라는 고루한 소재를 극복하기 위해 전시장의 조명과 디스플레이가 감각적이고 층고가 높아 공간감이 매우 시원해 모던한 느낌을 물씬 준다. 전시장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2030세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가벽을 없애고 일부는 재활용이 가능한 철제 구조물로 작품을 배치한 전시장의 친환경적인 노력이 엿보인다.
병풍은 서민, 사대부, 임금님이 다산과 출세를 염원하는 유교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조선의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임금의 어좌 뒤에 놓이는 <일월오봉도8폭병풍>는 5개의 산봉우리와 해와 달, 소나무, 물을 담고 있다.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일월오봉도8폭병풍’은 왕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한다. 일월오봉도는 왕의 뒤에만 놓일 수 있었기에, 병풍만으로도 왕의 존재를 대신할 정도였고, 왕실의 길상과 평안과 안녕을 기원했다.
<주요 작품>
채용신, 〈장생도10폭병풍〉, 1921년
십장생 중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중앙에 두고 주위에 학과 사슴이 주변에 그려져 있는 근대적 화법의 장생도
근대 병풍 중에선 가로 5m에 육박하는 청전 이상범이 마흔 살에 그린 '귀로 10폭 병풍'(1937)이 압권이다. 관념과 상상의 풍경에서 벗어나 현실의 산야를 담아냈다.
'백납도 10폭 병풍'(1907) 중 고양이, 호랑이, 독수리, 닭을 그린 디테일이 엄청 놀랍다.
안중식, 〈금니사군자화훼도10폭병풍〉 부분, 1901년
〈요지연도8폭병풍〉 중 '복숭아나무' 부분, 19세기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요지연도는 신선들의 어머니인 서왕모가 자신의 궁전 안의 연못인 요지에 천도복숭아가 열리는 것을 기념해 잔치 여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천도복숭아는 3000년만에 열리지만, 그 한 알이면 수명이 3000년 늘어난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부처와 사천왕, 수노인, 문수보살, 이태백을 비롯해 모든 신선들이 모여드는 가운데 복숭아를 훔쳐가는 원숭이 손오공까지,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압권이다.
오원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 19세기 후반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양쪽으로 뻗어 있는 역동적인 모습을 그린 가지의 역동성과 구도가 멋지다. 장승업 특유의 호쾌한 붓놀림과 매화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아름다운 병풍이다.
십장생도에는 기암괴석 사이로 물이 흐르고, 영지버섯이 피어난다. 약 10미터에 달하는 병풍에는 거북, 학, 천도복숭아, 해와 달, 소나무 등 장생을 상징하는 소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총 16짝에 달하는 대폭 회화의 중간 중간 창호지를 바른 창이 달렸다. 4개 면을 세우면 방안에 또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 있어 왕실에서 공간을 구획할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만 보러 다니다가 오랫만에 한국의 전통 미술을 접해보니 그 완성도와 디테일이 상상 이상이라 깜짝 놀랐다. 병풍을 통해 바라본 고미술은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충분히 트렌디했고, 섬세한 붓 터치나 꼼꼼한 마감은 현대 미술 못지않았다. 이 전시회를 다녀간 BTS 리더 RM이 최근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수식은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 조상이 쟁취한 품질보증과 같은 것’이라고 할정도로 정말 뿌듯함이 느껴졌다.
요즘 좋은 전시들도 대부분 무료가 많은터라 굳이 가지 않으려다가 <이석훈의 브런치카페>에서 소개한 곳이기도 하고 덕질겸 출동했는데 외부에서 수집한 걸 본사 사옥에서 보여주면서 1.5만원이나 받는 사악한 관람료와 비싼 주차비는 주의바람. (주차 평일 2시간 / 주말 3시간 30분 무료) 앞으로는 국립 박물관을 자주 애용하기로 다짐했다.
사전 예약 필수, 결재는 현장에서 진행함.
* 관람예약 : https://apma.amorepacific.com/contents/program/1298312/view.do
'Cultur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연으로의 회귀- 데이비드 호퍼의 개인전 '길 위에서' (2) | 2023.05.15 |
---|---|
이석훈 데뷔 15주년 기념, 달달했던 팬미팅 현장 후기 (0) | 2023.04.26 |
공짜로 즐기는 명품 전시, 리움 미술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조선의 백자' (0) | 2023.04.10 |
환상적인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 63을 만나다 (0) | 2023.04.07 |
7년 만의 SG워너비 완전체 콘서트 벅찬 현장 후기 (0) | 202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