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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by 미돌11 201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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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하루키의 팬으로서 소설만큼이나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사소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그의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안심과 그의 마니아적 취향에 쓰윽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솔직히 평생 직장에 얽매여 살아온 나에게 자유롭게 여행하며 글 쓰고 잔소리 듣지 않고 사는 하루키의 팔자가 부러운 적도 많았다. (물론 하루키처럼 천부적 재능은 없다는 것이 힘정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평단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35년간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하루키가 나름대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나름대로 하루키라면 많이 아는 골수 팬이라고 자부해왔는데 이 책으로 한층 더 이해가 깊어졌달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부모가 둘 다 국어교사라서였는지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생계를 위해 재즈 카페를 몇 해 동안 운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스물 아홉이 되던 해 어느 날 야구 경기장에서 문득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운명적인 생각이 들어 그 길로 문구점에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서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매일 조금씩 문장을 써내려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군조(群像)』지의 신인 문학상을 받게 되면서 등단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서른 두 살부터 카페 문을 닫고 전업 작가를 하게 되면서 그의 생활은 그야말로 금욕적이고 절제된 생활로 바뀌었다. 밤 10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매일 아침 달리기를 꾸준히 한 덕에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유명 작가가 된 후에도 원고를 쓰고 조깅을 하고, 하루 일과를 부지런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게 된다.

역시 작가 특히 소설가라는 직업은 범상치 않은 내공이 필요한 것이었다. 

하루키는 소설가로 오래 버티려면 실력, 운, 재능, 기개 등이 필요하지만 더욱이 보이지 않는 ‘자격'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조언을 정리해 보자면 대략 다음 3가지 정도이다.  

1.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끈질기게 해보라. 소설가는 머리가 아주 좋거나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보다는 꾸준함과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그는 달리기를 하면서 소설가로서의 미덕인 꾸준함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소설은 누구나 쓸수 있지만 계속 히트작을 내며 오래 버티기란 쉽지 않다는 당연한 얘기가 공감이 간다.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소설을 한 두 편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가로서 먹고 사는 것,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는 흡사 다른 직업인들도 마찬가지다. 

2.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져라.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아 이건 00이구나’라는 것을 알만한 그런 것이 시간을 지나면서 점점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하루키 스타일로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그에게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 방,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 앞에 앉아 난생처음으로 비치 보이스를 듣고(서핀 USA), 비틀즈를 듣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파르르 떨리면서 '아아, 이렇게 멋진 음악이 있다니. 이런 울림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나로서는 '오리지낼리티'라는 것의 합당한 모습입니다. 매우 단순하게. _p.113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뉴욕타임즈는 하루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21세기 소설을 발명했다._뉴욕 타임즈 북 리뷰

  

3.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된 이후 좋아하던 담배도 끊고 거의 30년 간을 일주일에 엿새, 하루 평균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한다. 매일 러닝을 하고,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마라톤을 하는 하루키가 좀 생뚱맞아보인다고 생각했다. 마라톤에 대한 하루키의 인터뷰를 보면 "소설을 쓰는 과정이란 정말 머리 속이 하얗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고 고된 작업이며 대단한 체력과 인내력이 요구된다. 모처럼 소설가가 되었으니 끝까지 해낼 수밖에 없다고 작정한 그 무렵에, 그렇다면 체력과 인내력을 키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색했다. 그것이 달리기였다."고 말한 것을 보고 조금 이해가 갔다.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소설가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행위였던 것이다. 매일 달리기 통해 체력을 유지하면서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이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니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마라톤을 선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루키의 글이 확실히 초반보다는 운동을 하고 난 후반의 것이 더 유쾌하고 건강하다고 느껴진다. 


이책을 보면 그가 초기작에서 등장 인물에 성을 붙일 수 없는 이유나 1인칭으로 주로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같은 소소한 것들을 얘기해줘 마치 팬들을 위한 특별 에세이같달까. 소설가로서 자신과의 지난한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며 목표를 달성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무척 감동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몇개 꼽아본다는 다음과 같다. 

이십 년 삼십 년에 걸쳐 직업적인 소설가로 활약하고, 혹은 살아남아서 각자 일정한 수의 독자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소설가로서의 뭔가 남다르게 강한 핵(core)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drive),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이런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_p. 28 제1회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중에서 

폴란드 시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는 말했습니다. '원천(원천)에 가 닿기 이해서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흐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쓰레기뿐이다."라고. 상당히 용기를 주는 말이지요(로버트 해리스의 '아포리즘'에서 인용). _p103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_p. 140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내가 작가가 되고 정기적으로 책이 출간되는 동안에 한가지 몸으로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고 해봐도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나 자신이 별 의미도 없이 소모될 뿐입니다. 그러느니 모른 척하고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물론 거기에는 준열한 자기 상대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은 프로로서 필수 조건입니다. 그 다음은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요? 기분 좋다는 게 뭐가 나빠?
_p. 271 제10회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아무튼 그의 문체를 오랫만에 다시 만나는 일은 나에게 가벼운 흥분과 즐거움을 주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가 소설이나 에세이를 계속 써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로 감사하다. 한 사람의 열혈 팬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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