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와 김훈을 같은 날 서점에서 집어든 건 순전히 즉흥적이었다. 하루키가 데뷔 25주년 기념 장편소설 <애프터 다크>가 새로 나온 줄은 알고 있었는데 서점에 간 김에 집어보려고 갔다가 김훈의 신간 <라면을 끓이며>가 내 시선을 끌어당긴다. 제목부터 호기심이 당긴달까...에세이집은 잘 사지 않는데 표지에 김훈 산문이라고 써붙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산문이라...얼마나 고어적인가.
직설적이고 강하고 단호한 김훈의 글처럼 책의 구성도 밥/돈/몸/길/글 이렇게 5장으로 간명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순서가 아닌가 짐작해본다. 솔직히 나는 김훈의 책을 한번도 정주행해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불편할 것 같았던 그의 문장은 나를 어르고 달래고 위로하며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1부 '밥'편에서는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의미와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다'편에서는 울진 바다에서 "내 마음의 병은 종신변비였다"며 마음에 쌓인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기를 갈망하는 순수한 작가의 마음을 내보인다. '목숨 1'편에서는 장모님의 죽음을 보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딸이 첫 월급으로 핸드폰을 사주었을 때의 그 감동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간 속에서는 덧없는 것들만이 영원하다.
모든 강고한 것들은 무너지지만, 저녁노을이나 아침이슬은 사라지지 않는다.
갓난 아이가 여자로 자라는 기적과, 덧없는 것들의 영원함만이 구덩이를 기다리는 이 무사한 그날그날의 행복이다.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서 행복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란다.
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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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돈'편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돈 1>에서 아들에게 사내의 한 생애가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하며 돈과 밥의 지엄함에 대해 얘기해주거나 <세월호> 편에서는 세월호의 침몰로 돌아오지 못한 유민이와 돌아온 6만원에 대해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3부 '몸'편에서는 아줌마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줌마는 세월과 더불어 늙어가면서 여성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사내들의 성적 시선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유인의 이름일 수도 있다.
남성에게, 아줌마가 세월 속에서 획득한 이 자유는 매우 낯설어 보인다.
"아줌마들은 당당하다"는 말에는 성적 수치심의 결여를 흉보는 의미가 들어 있다. (....)
아줌마들이 아줌마를 소외시키는 이 세상의 성적 기만과 허위에 당당하게 맞서 있기를 바란다.
한평생 연필과 지우개로 몸을 밀고 나가듯 집필해왔다는 '손1'에서는 작가의 우직함과 단단함이 드러난다.
김훈이기에 가능한 명문장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여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산문의 정수'라 불릴 만하다.
그가 라면을 끓이는 법은 정말 독특하다. 간편하긴 하나 공업적인 냄새로 가득한 라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중화하여 먹는 몸부림에 웃음이 날 정도이다. 고작 라면을 끓이면서 '고난도 기술'이라며 추켜세우는 건 또 어떠한가. 이런 면에서 하루키의 사소한 매력과 닮아있는 것 같다.
일찌기 하루키도 우동에 대한 찬가를 에세이로 써 낸 적이 있지 않은가. 역시 거장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건가?
날씨도 좋고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아침부터 돌위에 걸터앉아서 우동을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점점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동이라는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_ 우동 맛기행 무라카미하루키
김훈은 서민의 끼니를 이어주는 라면에 대한 애정과 애증을 숨기지 않는다.
라면이나 자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힌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사랑에 대한 작가의 성찰도 흥미롭다. 그는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 부른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 바다의 기별 >중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 책을 통들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박경리에 대한 추억 부분이다. 5부 '글'편에 나오는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편일 것이다. 박경리의 사위가 김지하라는 것도 어렴풋이 들은 듯한데 사상범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출소하게 된 사위를 마중나온 박경리(10개월된 손녀를 등에 업고)의 모습을 목도한 작가가 뒤늦게 쓴 글이다. 춥고 또 추운 겨울에 무려 너댓 시간 이상을 기다렸으나 사위는 장모를 보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휩쓸려 가버렸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쯤 아니었을까.…교도소 정문 맞은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저물어가는 교도소 정문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여인네 옆에는 영업용 포니 택시가 한 대 정차해 있었는데, 그 여인네가 출소자를 마중하기 위하여 대절한 택시였다. 아마도 운전기사가 연료를 아끼느라고 택시 안의 히터를 꺼버린 모양이었다. 아이 업은 여인네는 자동차 밖에서 떨고 있었다. 그 여인네는 자꾸만 허리춤을 들어 올려 미끄러져 내리려는 아이를 등의 한복판 쪽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때 그 여자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기보다도 더 무명(無名)해 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다만 사위의 옥바라지를 나온 한 장모였으며, 감옥에 간 사위의 핏덩이 아들을 키우는 팔자 사나운, 무력한 할머니의 모습만으로, 오직 그런 풀포기의 모습만으로 그 교도소 앞 언덕에서 북서풍에 시달리며 등에서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김훈은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루키는 그것을 상실이라고 부른다.
애프터 다크는 반쯤 읽었는데 약간 <1Q84>의 느낌이 나서 흠뻑 빠져서 읽고 있다. 리뷰는 다음에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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