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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ory

상실의 시대 영화화에 대한 미도리의 기대

by 미돌11 2009.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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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유님이 <상실의 시대>가 영화화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셔서 찾아봤더니 감독이 제가 좋아하는 그린 파파야 향기와 시클로의 트란 안 홍이고 일본 배우 캐스팅도 꽤 마음에 드는 걸 보아 무척 기대가 되는 영화다. 트란 안 훙은 스토리나 대사보다 은유와 상징 등을 통해 이미지로 대화하는 감독[각주:1]이라 상실의 시대와 잘 맞아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상실의 시대>는 1987년에 발간되어 (작가에 따르면 우연히) 일본에서만 800만부가 넘게 팔리고 36개국어로 번역된 밀리언셀러다. 트란 안 홍 감독이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고 나서 내린 결정이란다. 지금까지 판권을 넘기는 데 적잖이 주저해온 무라카미 하루키지만, 트란 안 홍이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감독이라 결정을 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영화화는 <토키 타키타니> 이후 두 번째다. 이 영화도 나쁘지 않았다. 내년 가을 개봉이라니 앞으로 한참 기다려야하는군.

배우 캐스팅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진 듯하다. 나 역시 가장 관심있게 본 미도리 역에는 한국계 여배우인 미즈하라 키코(18). 주인공 와타나베가 세상과 통하는 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활달한 성격의 미도리의 역할을 이 배우가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사진 만으로 봐서는 짧은 머리를 하면 훨씬 더 어울릴듯. 시원하고 큰 입이 마음에 든다.

그녀가 아래와 같은 대사를 소화하는 미도리를 상상해보라.

"하지만 나 외로와요. 지독하게 외로와요. 나도 미안한 줄은 알아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온갖 것을 요구만 하고. 제멋대로 지껄이고, 불러내고, 끌고 다니고.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있는 상대는 자기밖에 없어. 지금까지 20평생에서 난 단 한번도 나의 응석이 받아들여진 적이 없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전혀 모른 척했고, 그 사람도 그런 타입이 아니예요. 응석을 부리면 화를 내거든. 그리곤 싸움이 돼요. 그러니까 이런 말은 정말 자기에게 밖에 못해요. 그리고 나, 지금 지칠대로 지쳐있고, 누구한테 귀엽다든가 예쁘다든가 하는 말 들으면서 잠들고 싶어요. 그저 그것 뿐이에요. 눈을 뜨면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있을테고, 두 번 다시 이런 일방적인 요구는 하지 않겠어요. 절대로. 아주 착한 애가 될테니까."

두번째 관심사는 역시 주인공인 와타나베 역을 맡은 마츠야마 켄이치((松山ケンイチ, 24)는 <린다 린다 린다>에서 배두나에게 고백하던 '송', <데쓰 노트>에서 섬뜩한 캐릭터 L을 맡았던 배우. 사진으로만 봐도 약간은 우유부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이미가 느껴지네요.   

와타나베는 누구나 한번쯤 방황을 경험하는 20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삶을 택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며 살기로 결심하는 인물이다. 와타나베는 그렇게 잘 생기거나 똑똑한 학생이 아닌 너무나 평범한 학생이다. 그렇지만 그는 비굴하지 않고 잘난 점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한다.  

'상실의 시대'는 나오코와 미도리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가 전화박스에서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이름을 끝없이 부르면서 끝난다.

나는 그 동안 전화 저쪽에서 말이 없었다. 마치 전 세계의 가랑비가 온 지구의 잔디밭에 내리고 있는 것 같은 침묵만이 계속되었다. 나는 그 동안 줄곧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미도리가 입을 열었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얼굴을 들고 공중 전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

나가사와 역에는 다마야마 테쯔지라는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 소설 속의 캐릭터대로 쿨~한 느낌이다. 그는 하쓰미와 와타나베가 함께 한 저녁 식사 중에 와타나베가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른 점심과 늦은 아침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가사와'는 적극적으로 show를 하는 인물이다. 즉 두 가지 중에 현실 쪽을 택해 거짓된 몸짓을 최대한 잘 해내려고 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 인물의 내면에는 그런 현실적 노력과는 정반대 되는 무언가가 항상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데에서 그 자신만의 지옥이 생기고, 악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여주인공 역인 나오코는 기쿠치 린코(菊地凜子, 28)가 낙점. 그녀는 체념하는 법 또는 체념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현실 세계와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계에서, 나오코의 표현대로 '작은 고리' 안에서 '무인도의 아이들처럼 배고프면 바나나를 따먹고 외로우면 서로의 품에 안겨 잠드는' 생활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대면해야 하게 되었을 때 그 현실이 그들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그들만의 진정한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나오코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다소 복잡하게, 줄이 얽힌 것처럼 얽혀 있어서, 그걸 하나하나 풀어나가자면 힘이 들어. 그걸 푸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어떤 기회에 확 다 풀릴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분위기를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에 맞서는 것임과 동시에 외적 사회의 무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낸 <한국의 독자들에게>중에서

오랫만에 내가 좋아하는 <상실의 시대 명대사>들을 꼽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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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영화를 만든 계기 중 하나는 이야기체 영화(cinema narratif)에 대한 분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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