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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ory

영화 '제보자'가 한국 언론에 하고 싶은 이야기

by 미돌11 201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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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건. 당시 내 기억으로도 PD수첩이 괜한 사람을 흠집낸다며 마뜩지 않게 보는 여론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직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해온 임순례 감독에 대한 믿음과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 그리고 유연석이란 청년에 대한 호감(^^)으로 보게 되었다. 사실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영화는 내가 그리 즐겨보는 장르가 아니기도 하다. 보고나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거니와 영화에서 부르짖는 사회 정의가 과연 현실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력층이나 정치인들은 오늘도 자신의 배를 불리며 지들끼리 다 해먹으며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한 편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모티프를 2005년의 이른바 '황우석 사태'에서 따왔지만, 엔드 크레딧 말미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영화적으로 재구성된 픽션임을 밝힙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황우석 사태를 충실하게 복기해 냈다. 사건의 전개, 생명공학에 대한 전문적인 학습, 세포 배양 사진이나 연구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서 그런지 사실감과 몰입감이 뛰어나다.   

혹자는 다소 밋밋하고 한방이 없는 연출이라고 하지만, 이 역시 감독의 의도인듯. 폭발하지 않지만, 완곡하고 절제된 메시지를 전하는 임순례 감독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Point 1. 황우석 사태는 현재 진행형 

이 영화는 황우석에 대한 '최초의 노벨상 수상' 기대로 정부, 언론, 전 국민이 그를 편드는 집단적 광기 속에서 시사 방송사 PD라는 자신의 직업 윤리를 지키며 진실을 파헤치는 역할을 해 낸 이들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통해 한국 언론(신문)들의 추악한 행태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익론·특허 등을 내세워 복제 줄기세포가 최고라고 하는 건 혹세무민을 하며 대중의 기대를 키운 언론, 제대로 검증도 해보지 않고 분위기에 쏠려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언론, 보고체계가 엉성하고 상황 파악을 느려 속 터지는 권력층 등은 10년이 지난 아직도 그대로이다. 아니 세월호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실망스러움만 커졌을 뿐이다.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자처했던 황박사는 자신의 야망에 이끌려 연구원들을 압박해 줄기세포 조작을 벌였고, 이를 파헤치는 방송사를 상대로 치밀한 압박을 해나간다. 그러던 중 그의 측근이었던 한 연구원에 의해 '줄기 세포는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제보가 날아든다.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인 MBC PD수첩의 한학수PD가 2006년 11월 출간한  ‘황우석 사태’ 전말을 담은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의 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사회평론)을 9월에 내고 이 책에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대한민국은 제보자K 부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황 교수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진 몇 년 뒤에, 우리는 세계로부터 쓰라린 부메랑을 맞게 될 운명이었다. 너무나 커져버린 거짓이 거품처럼 터진 순간, 대한민국이 감당을 못하고 비틀거릴 뻔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사기꾼들’들이라고 한국인들을 놀렸을 것이다. 아마 그 와중에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줄기세포의 성과를 입증하기 위한 임상실험에 동원되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생명공학에 문외한이던 시사교양PD에 불과한 이들이 직업 정신 하나로 전 국민을 속였던 황 박사의 거짓을 밝혀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황우석 사태가 내년이면 10년이 되지만 황우석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2006년 3월 서울대에서 해임되면서 모든 명예와 권력을 잃었지만, 대법원에서 황우석 박사에게 최종 유죄 결정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층들에게 후원을 받으며 복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법원이 황우석 사태의 본질을 "타인의 삶을 한 개인 성공 위해 악용한 것"이라고 정의하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진실은 언제나 너무 뒤늦게 드러난다. 

Point 2. 영화 '제보자' 속 그들 

박해일은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했던터라 임 감독에 대한 신뢰로 14년 만에 출연을 무작정 승낙했다가 시나리오를 받고 너무 무거운 스토리에 당황했다고 한다. 유연석은 응사의 칠봉이와는 다른 캐릭터를 하고 싶었던 차에 연구소 팀장에 아이 아빠라는 다소 도전적인 심민호 캐릭터에 뛰어들었다. 임 감독은 '혜화 동’ 때 유연석을 보고 "순수하면서 강직하고, 그 안에 유약해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고 한다. (아~ 역시 그는 내 스타일~) 역시 작은 역할이라도 충실히 해내야 10년뒤에 주연을 꿰차는구나 ㅎㅎ 

영화를 보고나면 실제 '제보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보통 조직에 몸담고 있다보면 적당한 부정은 눈감고 넘어가고 침묵하기 마련인데 그는 왜 이런 어마어마한 '제보'를 저지른 것일까? 황 전 교수팀의 유일한 의사 출신 연구원으로,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줄기세포를 수립, 배양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제2저자로 오른 그가 왜 제보자로 낙인찍혀야 했을까?  

인터뷰를 보면 연구성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황 전 교수가 언론에 먼저 발표해 버리는 등 과학자로서 부적절한 연구행태를 보이는데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에 줄기세포를 임상용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2004년 4월께 황 전 교수팀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황우석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10살 소년에게 조만간 임상실험을 한다는 내용을 알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부작용이 검증안된 줄기세포를 넣으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실제로 영화에서 복제견이 온 몸에 암이 퍼져 죽기 직전인 모습이 나온다. ) 

‘제보자’의 실존 인물인 류영준 강원대 의대 교수는 2년간의 도피와 칩거 후 얼마 전 참여 연대와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입을 열었다. <PD수첩>은 난자윤리, 줄기세포 조작을 확인해 보도했고, 참여연대는 제보자 보호와 지원을 맡았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간 제보자로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Point 3. PD수첩 속 한국 언론  

사실 나는 이 영화에서 황우석 스캔들보다는 "전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싸움을 시작한 MBC PD수첩 시사PD들의 활약을 보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누구나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다보면 진실을 눈감고 대의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난 아니지만 조직의 녹을 먹으니 할 수 없어"라고 자신을 합리화한다.  

실제 이 사건의 담당PD였던 한학수와 책임PD였던 최승호PD, 그리고 이를 도왔던 
김보슬·김현기 PD 4사람이 핵심 인물이다. 당시 책임PD였던 최승호 PD는황우석 사태 때 'MBC는 왜 그래'하는 식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최문순 MBC 사장도 보도국의 거센 반대에도 방송을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MBC는 취재 윤리 논란(검찰 조사 언급)으로 대국민 사과방송까지 하고 난 이후에도 5차례에 걸쳐 방송을 내보냈다. (아..그 강건하던 MBC의 정신은 지금 어디로 ㅠㅠ) 

MBC ‘PD수첩’팀은 2006년 올해의 '기획보도상' 수상(2006.02.17)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논란과 송사에 휘말려 내부 경영진과의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결국 2012년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에 이어 작가 해고 논란이 불거지면서 11개월간 방송이 중단되면서 PD수첩의 간판 PD였던 최승호 PD는 2012년 6월 20일, 파업 참여를 이유로 MBC에서 해고되었다. 

황우석에 대한 여론이 호의적이었을 때, PD수첩이 황우석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언론사는 황우석을 옹호하고 참여정부와 PD수첩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황우석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태도를 돌변해 황우석 교수와 참여정부를 맹비난하는 방향으로 틀었다. 한국 언론은 무책임하게 '황우석 신화'를 부추겼고 이로인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윤민철 PD가 사장의 차를 가로막고 ‘방송강령’을 외치는 장면은 좀 손발이 오글거리긴해도 <제보자>의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로 시작하는 윤민철 PD의 절규는 갈수록 퇴보하는 언론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러기엔 그들의 밥그릇이 너무 가난하다. 

부디 이 영화를 통해 '기레기'들의 판을 치는 요즘 시대에 언론사나 기자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 바란다.
   

[사족]

- 박원상, 권해효, 박해일이 연기한 PD역할은 몸에 꼭 맞는듯 , 마치 그 직업에 10년이상 종사한 느낌 ㅋㅋ
  근데 방송국이 운동권 써클도 아니고 상사에게 형, 동생하는건 좀 보기 거슬림.
- 박해일은 정말 대체불가능한 연기파 배우. 역마다 어쩜 이렇게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하시는지 신기함 ... 
- 유연석과 전국노래자랑에 같이 출현한 류현경이 부인으로 등장. 벌써 네번이나 함께 출현하시다니 부럽습니다. 흑흑.. 
- 오늘 기사를 보니 개봉 9일만에 100만 돌파네요! 저도 일조해서 기뻐요 ^^



제보자 (2014)

8
감독
임순례
출연
박해일, 이경영, 유연석, 박원상, 류현경
정보
드라마 | 한국 | 113 분 | 2014-10-02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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