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용감한 여성 서사 -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최은영 작가는 4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작가로 여성의 삶과 성장을 그리면서 감정의 섬세한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3월 독서모임에서 단편소설을 처음 접한 후 역주행 중인데 <밝은 밤>과 <내게 무해한 사람>을 소개해본다.
2024.03.01 - [Bookmark] - 인생을 직면하는 용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1. 밝은 밤
‘증조모-할머니-엄마-나’ 4대 여성의 삶을 관통한 100년의 시간. 이혼을 한 나는 회령으로 내려가 우연히 외할머니를 만난다.
엄마와 소원해 20년 넘게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이토록 먹먹하게 풀어내는가.
'내 엄마를 닮은 손녀'로 다시 화해하는 이야기라니.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가 계속 생각이 나는 책이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주는 혈연지간보다 남이라도 좋은 인연과의 느슨한 연대과 우정으로 '밝은 밤'을 만들수 있다.
그래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해도 비난하지 말아야지
상대도 충분히 힘들게 최선을 다하고 있을테니.
✅ 인상적인 구절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p.136
"다음 생애엔 네 딸로 다시 태어날게"
2021년 대산문학상 수상작.
2. 내게 무해한 사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첫 등장 소설인 '쇼코의 미소' 이후 2년간 문학지에 발표했던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매만져서 묶어낸 퇴고한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로 시간이 흘러도 마모되지 않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마도 예민하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을것 같은 작가는 평소 친구, 가족, 연인, 친척 등 복잡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눈에 잡힐 듯이 잘 그려낸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마주하게 된 그 시절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때의 마음
그 단단한 시간의 벽을 더듬는 사이 되살아나는
어설프고 위태로웠던 우리의 지난날
우리는 자신의 어린시절이나 미숙했던 젊은 날의 마음을 그냥 묻고 지나가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이에 맞서서 들여다보고 다시 일어난다.
✅ 인상적인구절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모래로 지은 집 p.121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모래로 지은 집 p.179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 손길. p.235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소설을 쓰는 작가”(소설가 김연수)
최은영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러는 동안 마음을 채우고 흘러가는 감정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마들렌을 입에 무는 순간에 어린 시절이 끝없이 흘러나오듯, 최은영의 소설에서 누군가의 고개가 떨어지거나 한숨을 내쉬는 순간에 세계는 온통 뒤흔들리며 멈춰 선다. _강지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