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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타인을 향한 섬세하고 치밀한 탐구, 이타주의자 선언

미돌11 2025. 9. 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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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이 겹치는 영역을 알아채고 신경 쓰는 마음’, 이것이 저자가 내린 ‘이타심’, ‘이타주의’의 정의다. '호구'로 폄하되는 이타심이 아니라 '나'로 출발해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자신을 스스로 서사가 없는 사람이라 칭하며 논문 외의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생각이 없었던 최대현 교수가 뒤늦게 장애인 운동과 416합창단 활동을 하며 공적 타인을 고민한 사적인 기록이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두번 세번 읽어나가고 싶어지는 좋은 인문학 책이다.

낯선 타인을 향한 섬세하고 치밀한 탐구, <이타주의자 선언>

제목 : 이타주의자 선언 -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저자: 최태현 교수 (고려대 행정학) 
출판 : 디플롯 
  2025년 1월 

선정도서 소개 :

이타적 마음을 강요하거나, 칭송하거나, 이타심으로 가득한 세계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타인으로 존재하는 ‘나’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할 때, 추상적이고 막연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세계로서 ‘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한 이타주의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 발제 - 토론 포인트 

1. 이타심의 의미와 한계: 이타주의자 선언은 이타적 마음을 강요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으며, 각자의 곁에 있는 타인에 대한 소고이자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 대한 기록이다.

2. 공적 슬픔과 타인의 발견: 책은 타인에 대한 공감, 배려, 희생의 태도,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연대 등 다양한 태도를 다루며, 타인과의 거리, 가족·시민으로서의 타인, 죽음과 이별 등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이타심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한다. 

3. 사회적 맥락과 실천: 이타주의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각자의 고유한 위치에서 연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문화와 개인의 위치,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탐구한다.  
 

 

 주요 논의한 내용 

 - 이타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점 (일상 속 작은 배려가 이타주의의 시작) 
 - '오지랖'과 이타주의의 경계에 대한 논의 
 - 저자가 소수, 약자에 공감하고 행동하는 지성에 감사하는 마음
 - '송곳'의 대사처럼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에 공감 
 - 자식과의 관계도 셀프케어 VS 독립심에 대한 경험 토론  
 - 가족과의 거리두기 : 사랑의 동의어가 아니라 욕망을 제어하고 거리두기로 바꿀 때 상호 평화가 찾아온다는 경험 
 - 아버지의 병원 청탁 않고 평소 신념을 지킨 저자가 멋지다고 생각
 - 결국 내면 성찰이 중요 - 나를 잘 아는 이기심이 곧 이타심의 출발선 
   상대에 대해 그럴수 있다는 이해와 기대를 줄이면 실망도 적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이타주의 실천 방법

1. 일상 속 배려와 나눔: 버스에서 자리 양보, 길 안내, 헌혈, 쓰레기 줍기 등 일상에서 남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

2. 전문성·기술 활용: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성을 활용해 타인을 돕는 방법(예: 요리사라면 저소득층 가정에 음식 제공)  

3. 자기 성찰과 동기 부여: 매일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작은 실천이 주는 의미와 기쁨을 경험


이타심은 타고난 마음으로만 영글지 않습니다. 이타심은 타인을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인지상정’이 있지 않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지랖’이라는 말도 있죠. 이해 없는 본능적, 즉각적 이타심을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는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그 타인에게 얼마나 모멸적으로 느껴질지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 없는 이타심은 위험합니다.--- 「1장, 너와 나」 중에서

이타심은 사랑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최소한 그런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하나 되기의 욕망을 제어하고 그것을 거리 두기로 바꾸어낼 때, 타인을 지향하는 마음은 비로소 서로에게 작열하는 불길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 될 수 있습니다.--- 「1장, 타인을 향한 감정」 중에서

가끔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소중해서 아주 천천히 가까워지고 싶다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을 헤아려보는 게 익숙해지면서, 평생 순수하게 가까워짐을 느끼며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과 이론과 실천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습니다. 죽을 때까지 궁금함을 품고 가까워짐만을 느끼며 관계를 이어가다가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1장, 마음의 거리」 중에서

힘들다면 마음껏 이기적이 되어봅시다. 마음이 불편해질 때까지, 사람이 보일 때까지. 그 지점을 알고 나면 이제 우리는 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쯤 멈춰 서게 될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식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나를 잘 아는 이기심은 이타심의 출발선입니다.--- 「2장, 희생하지 마세요」 중에서

마지막으로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건, 결국 가족이 관계의 이상적 유비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가족은 다시 정의될지언정 여전히 가족입니다. 참사의 유가족들은 또 다른 유가족들을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가족이란 단순히 선택한 적 없는 혈연 집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연이든 함께 삶을 빚어간 사람들과 그들의 상실이 비탄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얽힌 관계의 총체입니다.--- 「3장, 모쿠슈라」 중에서

딸은 제가 어쩌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아름답게 성장했을 것입니다. 딸을 타자로 바라보았던 날, 비로소 딸을 ‘너’로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를 타자로 바라볼 날의 딸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3장, 딸: 일기들」 중에서 

웹툰 송곳에 이런 대사 "당신들은 안 그럴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우리는 아직 다른 자리에 서보지 않앗을 분입니다. 이타심이 이기심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이기심이 이타심으로 이어지는 고리보다 짧습니다. --- 「4장, 달의 어두운 면」 중에서

지금도 생각한다. 그 밤에 지위와 인맥을 통해 ‘아는’ 사람들을 동원했더라면, 청탁금지법은 잊고 내가 가진 사회자본을 최대한 활용했더라면, 그래서 한 시간 안에 병원에 입원을 시킬 수 있었더라면 아버지는 살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떠올리면 괴롭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가 구급차에서 사경을 헤매시던 그 세 시간 동안 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린 적이 없다.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저 질문보다 더 무거운 질문은 ‘만일 내가 그런 선택을 해서 아버지가 더 사셨다면, 나는 과연 떳떳했을까’였다.
--- 「6장, 아버지가 가시던 밤」 중에서

제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무심하게 툭 던진 질문에 생각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대?” 지금도 저는 그 세미나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세미나였다고 생각합니다(학계라는 공간에 국한할 때). 하지만 아내의 질문은 제 인식의 지평이 얼마나 좁았는지, 제 안에 타자의 경계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일깨우는 스님의 죽비와도 같았습니다. -「6장, 무엇을 위해 살고, 싸우고, 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