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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브

by 미돌11 2008.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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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촌철살인적인 대화 감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아멜리 노통브의 열번째 작품. 지난해 서점에서 머큐리의 표지의 일러스트에 혹해서 말랑말랑한 소설인줄 알고 샀다가 "헉..이게 머야" 그러곤 다 읽지 못하고 쳐박아둔 아픈(?) 기억이 있는 작가다. 내가 다시 그녀의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책읽는 엄마의 보석창고라는 블로그 때문이다. 이젠 블로그가 내게 책도 추천해주는구나 ^^;

거침없는 대화체와 치고 박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이뤄진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불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범상한 통념에서 벗어나 철학적 콩트를 엮어내는 천재적인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책에 다시 도전했다. 다행히도 이 책은 150페이지 분량의 하드커버에다가 큼직한 글씨로 쓰여져 있어서 맘 먹으면 두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 행간의 의미를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으려면 좀 더 시간을 투자해도 좋다 - 책이다.

한 남자가 공항 대기실 - 요즘 내가 읽는 책에는 공항이 왜 이리 자주 등장하는 건지 ㅠㅠ - 에서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는데, 웬 낯선이가 무작정 그의 곁에 진을 치고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책 끝머리에 가서나 궁금증이 풀리는데 거의 식스 센스에 버금가는 반전이다. 강간과 살인 등의 섬뜩한 얘기가 줄을 잇지만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독자의 놀람은 끝나지 않는다. 잔인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아멜리 노통브는 우리에게 '적(敵)은 우리 내부의 자아'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일본과 중국,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대학시절 벨기에로 돌아온 그녀는 타고난 반순응적 기질과 체제에 대한 반항정신, 돈과 성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그녀의 소설마다 묻어있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거부감, 일부 철학자에 대한 취향과 인용, 억제할 수 없는 자기 파괴 욕구, 음울한 분열증, 죄의식, 우연한 만남, 타인과의 갈등관계 등의 그녀 책의 단골 소재이다.

[참고] 화장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미용(美容)이라는 의미의 장을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보편적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를 환기함과 동시에 그 다의적 차원에서 일종의 '가면' 즉 위장을 암시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

그게 아니지요, 선생. 내가 고양이 밥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어떤 적(敵)이 그걸 강제로 먹게끔 한 거였으니까요!
그때까지 내안에서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던 그 적이 하느님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드러나면서,
신의 존재보다는 그 힘에 대한 나의 믿음을 여지없이 앗아가버린 거랍니다. P.31

내가 적의 존재를 믿는 것은, 밤낮 할 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적이란 내부로부터 파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해버리지요.
그는 각각의 현실 속에 내재하는 조락의 기운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P.33

누구나 자신만의 도덕률이 있는 겁니다.
나는 어떤 행위를 판단할 때 그것이 내게 주는 즐거움을 척도로 삼고 있어요.
관능적인 도취감이야말로 존재의 지고한 목적이며, 그건 그 어떤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P.99
                                                                                                                                                                                                                                  
내가 내부의 적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그건 내가 자네 밖에선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자네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일세. (중략)
자넨 이 세상에서 가장 성가신 내부의 적을 가지고 잇는 거라네. 바로 나 말이야 P.123

비행기 시간이 연기되었기 때문이지.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을테니까.
자네에게 진짜 여유가 생기는 시간 말이야. 자네같은 부류는 예기치 못한 공백속에서만 말랑말랑해지거든.
거기다 오늘 아침 자네 무의식을 스친 날짜, 즉 10주년 기념일이 절묘하게 겹쳐진 셈이라네. P.140

적의 화장법
카테고리 소설/희곡
지은이 아멜리 노통 (문학세계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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