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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ory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스틸 앨리스(2015)

by 미돌11 2015.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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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잃어간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상실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해도 서서히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차라리 암에 걸리는 걸렸다면 이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암이나 알츠하이머, 파킨슨과 같은 불치병의 공포에서 예외일 사람은 드물것이다. 부모님의 병이 나와 나의 아이에게 유전적으로 대물림된다면? 이런 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평생 쌓아온 경력, 사회적 지위, 친구, 가족 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스틸 앨리스>는  아내, 엄마,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가 조발성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하면서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는 이야기이다. 31개국에서 출간되어 2,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로 출간되었다. 하버드대 신경학 박사 출신의 작가인 리사 제노바가 자비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영화는 루게릭 투병하면서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故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유작이라 그런지 어찌보면 뻔한 불치병 투병기가 좀 더 특별한 메시지를 담는듯 보인다. 

여기에 전세계를 감동시킨 줄리안 무어 생애 최고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틸 앨리스>는 주인공 ‘앨리스’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주력함으로써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바꿔놓는다.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독은 어떤 것일까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녀의 시선에서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고 모두가 그녀의 세상에 편입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는 단계를 여러 과정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 작은 행동의 변화부터 대사의 뉘앙스까지 세세하게 신경쓴 것이 엿보인다.  

처음 병에 걸린 걸 안 그녀는 “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누구인지도, 무엇을 더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조깅을 하다가 길을 잃거나, 강의 도중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수십년을 만들어온 음식의 레시피가 생각나지 않거나, 손으로 짚어주지 않으면 책도 읽기 힘들 정도로 병이 진척된 시점에 그녀는 알츠하이머 학회에 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3일간 준비한 연설문을 낭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있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난 일을 잊는 것은 슬프지만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약간은 불안한듯 공허해보이는 줄리언 무어의 대사와 표정, 몸짓은 최고였다. 그녀는 단지 앨리스의 정서나 감정뿐만 아니라 앨리스 자체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물이 흘러내려서 깜짝 놀랐다. 스스로 울지 않고도 눈물을 쏟게 한 줄리안 무어의 섬세한 내면 연기는 그녀에게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50대 중반에 이렇게 세심하고 우아한 연기를 할 수 있다니.. 

이 연기로 줄리안 무어는 다섯 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제87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칸, 베니스, 베를린 3대 국제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여배우가 되었다. 무려 쉰을 넘기면서도 줄리언 무어가 독립영화와 블록버스터, 장르물과 정극을 누빈 결과이니 그녀의 성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리가 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심지어 언어학자인 그녀가 기억과 말을 잃다니...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면, 그녀는 '여전히 앨리스'로 남을 수 있을까?

줄리안 무어는 서서히 기억과 함께 말을 잃어가고, 주변 인지를 하지 못하는 등의 행동 장애를 겪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과정과 그 속에서도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꿋꿋하게 삶에 맞서는 모습을 감정의 결이 살아있는 섬세한 연기로 선보인다. 이를테면 앨리스가 딸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은 척할 때 짓는 표정이나 가족들이 앨리스 몰래 주고받는 짧은 눈짓을 포착하는 세심한 연출력도 인상적이다. 자신의 병을 알고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동영상을 보고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살을 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플정도로 안타깝다. (결국 그마저도 실패하지만 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옆에서 배우가 되려는 자신의 꿈(심지어 엄마가 반대했던 꿈)을 보류하면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막내딸 ‘리디아’ 역할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스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녀의 곁을 지키며 보살펴주는 듬직한 남편 '존' 역할은 알렉 볼드윈이 맡아 부드러운 매력을 뽐냈다.

병에 걸린 그녀로 인해 남편은 인생 최대의 기회를 선택하기를 망설여야 하고, 딸은 자신의 꿈을 미뤄야했다. 이들 가족이 보여준것처럼, 마지막 장면인 리디아와 앨리스의 대화에서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사랑’이었을 것이다. 



스틸 앨리스 (2015)

Still Alice 
8.6
감독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에린 다크
정보
드라마 | 미국 | 101 분 | 2015-04-29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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