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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ory

사랑이 나이를 먹으면 추억이 된다, 비포 미드나잇(2013)

by 미돌11 201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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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0대에는 Before Sunrise.

내 나이 30대에는 Before Sunset.

그리고 내 나이 40대에는 Before Midnight.


1996년 비엔나를 여행하며 제시와 셀린느의 하룻밤 짧은 사랑을 그린 <비포선라이즈>는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의 대명사였다. 

그로부터 9년뒤인 2004년 <비포 선셋>이란 제목의 속편이 파리를 배경으로 등장해 그들은 사랑을 재확인하고 암시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또 9년 뒤 2013년 <비포 미드나잇>은 사랑하는 두 남녀가 결혼을 해 아이들 둔 40대 부부가 되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무려 18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감독과 배우는 변함 없이 다시 뭉쳐 다시 이야기를 만들었다.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는 2편에 이어 3편에서도 대사를 만들기에 참여(각본)했고, 이것이 사랑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로 이어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1,2편보다 3편의 대사들이 더 쏙쏙 와 닿아 영화를 보는 내내 메모를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은 왔다간다(Passing Through)


이 영화의 초반부에 그리스 휴양지에서 만난 20대, 40대, 50대, 70대 연인(혹은 부부)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나누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감독의 입을 대신에 이 영화의 주제를 요약해 준다. 20대의 열정적인 사랑, 중년의 현실적인 사랑, 노년의 애틋한 사랑까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 추억이 된다. 


항상 출장으로 집을 비운 제시를 대신해 혼자서 쌍둥이를 키우느라 동분서주해 온 셀린느는 "난 잔다르크가 아니다. 내겐 현실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 혹은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가 낮다."고 가감없이 말한다. 이혼 후 방학에만 아들과 한달을 지내곤 하는 제시는 중요한 시기에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미국에 가서 살자고 하는데 셀린느에게는 이런 남편이 이기적이고 철없이 보인다. 

"당신은 다큐로 말해도 개그로 받잖아"

오랫만에 아이들 없이 그리스 별장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면서 나누는 이들의 대화가 이 영화의 중심 뼈대를 이룬다. 9년동안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사랑은 또 얼마나 차가워졌는지 여실히 보여진다. 그리스 해변의 한 노천카페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아직 있다(Still there)'를 읊조리던 이들.

오랫만에 호텔에서의 하룻밤, 모닝섹스를 기대하던 남편은 공항에서 아들이 건 전화를 계기로 부부 싸움을 하면서 산통이 깨진다. 여자는 화가나서 '끝이야'를 외치며 집을 나서고 남자는 한참 뒤 뒤따라 나온다. 역시 둘만의 사랑 타령을 하기엔 책임져야할 것도 많고 현실적인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나도 그들처럼 연애를 하고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한다. 


우리 사랑, 낯설게 하기

95년 여름 1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처음 만난 이 커플이 2004년 다시 파리에서 재회를 하고, 지금 다시 그리스에서 만났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1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행복할까?

나도 항상 궁금했다. 왜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의 결말은 왜 모두 "결혼했다"일까? 결혼을 하고 그들은 모두 내내 행복했을까? 결혼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 어느새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제시'와 환경 운동가가 된 '셀린느'. 우수에 찬 눈빛의 애단호크도 배 나온 아저씨가 되고 줄리 델피도 나이를 먹어 청초함이 사라진 아줌마가 되었지만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그대로 노출한다. 이제는 유적이 되어버린 그리스의 모습은 사랑의 흔적만을 간직한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그것이 우리 인생이고 사랑인 것을. 

이 영화는 두편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두 배우의 대사로 구성된다. 어쩔 수 없이 로맨틱은 사라지고 현실적인 다툼(육아, 가사, 직업, 일)만 남았다. 현실적인 이런저런 갈등과 다툼으로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이들의 대사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 버린다. 전작에 비해 '사랑과 시간'을 주제로 많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나하나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다.(우리 부부는 왜 저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이 대화하자면 싸움 건다고 겁부터 낸다니 원 ㅠㅠ)   

어쩜~ 이게 바로 우리 삶이잖아!! 젊음과 나이 듦, 추억과 기억, 그리고 과거와 미래.
결국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억과 꿈.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어떤 섹스보다도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하는 기쁨이
더 짜릿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화가 통하는 상대와 결혼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덤으로,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 마을 카르다밀리. 
뜨거운 태양 아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풍성한 올리브와 와인을 마시며 사랑과 삶에 대해 즐거운 토론을 벌이거나 바닷가 옆 해변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훌쩍 그리스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스 여행지 포스팅] 비포 미드나잇의 배경, 그리스여행의 석양

 

 [참고 정보] 여의도 CGV 무비 꼴라주 

 
CGV에서 양질의 영화를 선별해 소개해주는 무비 꼴라주를 여의도에서 수/토 주 2회 진행하고 있으니 좋은 영화를 찾는 분들은 참고바란다. 영화가 끝나고 10분 정도 전문 큐레이터가 나와서 영화에 대한 해설을 해 준다. 대기업의 영화 배급으로 스크린 점령이 심화되면서 좋은 영화가 설 자리가 없어 항상 늘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계속 영화를 소개해주고 전문가 해설까지 해주니 정말 좋았다. CGV영등포보다 여의도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

# 홈페이지: http://www.cg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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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 (2013)

Before Midnight 
7.7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샤무스 데이비-핏츠패트릭, 아리안느 라베드, 아티나 레이첼 챙가리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8 분 |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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